별 걸 다 만드는 사람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그들은 전문가들만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고도의 첨단 과학기술도 구경만 하지 않고 직접 연구하고 ‘사용’한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시민실험실에서 생명공학 실험을 하고, 우주로 가는 로켓을 만들기도 한다. 생명공학 DIY의 경우 한국에는 아직 커뮤니티나 시민실험실이 없지만 외국에는 수십 개가 활동 중이다. 국제 네트워크인 DIY바이오(diybio.org)를 비롯해 캘리포니아의 바이오큐리어스(biocurious.org), 뉴욕의 젠스페이스(genspace.org), 파리의 라 팔라스(lapaillasse.org) 등이 그것이다. 실험실을 운영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필요한 장비를 직접 개발하기도 하면서, 이들은 ‘모두에게 열린 과학’의 최전선을 달리고 있다. 과학기술의 민주주의적 사용을 외치며 공유와 협력을 바탕으로 여럿이 함께 꾸는 꿈, 한국에도 있다.
1)우주 기술의 혜택 누구나 누려야
지난 3월 10, 20대 청년 17명
유한회사 ‘페리지 로켓’ 설립
30톤 추력 액체 로켓 발사 목표
아르바이트로 예산 충당 어려움도
우주 로켓을 만드는 청년들
“이거 모형 아니고 진짜에요? 직접 만든 거라고요? 진짜 우주로 쏜다고요?”
15, 16일 서울 불광동의 메이커 페어 서울에 참가한 페리지 로켓 팀의 부스를 찾은 관객들이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이다. 페리지 로켓이 개발한 고체 로켓 모터용 부품과 액체 로켓 엔진, 제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보고도 놀랍다,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어린 청년들이 모여서 우주 로켓을 만든다고? 그건 NASA(미국 항공우주국) 같은 국가기관이나 하는 일 아닌가. 민간 영역으로 넘어가는 중이긴 하다.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자체 개발한 로켓 팰컨9 발사에 성공한 게 2008년의 일이다. 버진 갤럭틱의 리처드 브랜슨,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도 우주관광사업을 하겠다며 발사체를 개발 중이다. 한국은 아직 100% 국산 우주발사체를 만들지 못했다. 한국의 첫 우주발사체인 2단 로켓 나로호(KSLVⅠ)가 2013년 발사에 성공했지만, 1단 액체 엔진 로켓은 러시아산이었다. 페리지 로켓의 용감한 도전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페리지 로켓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한국 청년 17명으로 이뤄진 우주발사체 기업이다. 올해 3월 유한책임회사로 등기했다. 멤버 중 3명은 고등학생이고 대표는 캐나다 유학 중인 만 19세의 수학 전공 대학생이다.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하려다가 투자나 후원을 받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돈 벌어서 로켓 쏘려고 회사를 차렸다. 출발은 2012년, 천체관측 동호회에서 만난 아마추어 로켓티어 4명의 ‘마루’ 프로젝트였다. 고체 엔진 로켓을 고도 5km까지 발사하는 데 성공한 뒤 사람을 더 모아서 아마추어 로켓연구회로 발전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해 2014년 첫 액체 엔진을 개발했다.
2020년 30톤 추력 상용로켓 쏜다
페리지는 2020년 30톤 추력의 2단 액체 엔진 로켓 발사를 목표로 뛰고 있다. 5톤 추력 엔진 6개를 묶어서 30톤 추력을 내는 방식이다. 핵심은 엔진 개발이다. 페리지 대표 신동윤(캐나다 워털루대 1년)씨의 표현을 빌면 “엔진은 로켓 기술의 끝판왕”이다. 액체 엔진은 고체 엔진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한 기술이다. 페리지는 3년 전 액체 엔진의 초기 형태를 만들었고, 현재 엔진을 키우고 성능을 개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다음달 연소 시험을 거쳐 내년 3월 1단 추력 1톤, 2단 추력 600kg, 길이 6m의 사운딩 로켓을 발사할 예정이다. 사운딩 로켓은 본격적인 우주발사체의 아래 단계로, 우주에 가긴 하는데 20~30분 정도 머물렀다가 떨어진다.
페리지의 꿈은 누구나 우주에 닿게 하는 것이다. 2020년 발사할 로켓은 개인 인공위성을 싣고가서 우주에 띄울 예정이다. 요즘은 재미 삼아 캔샛(음료수 깡통 크기 위성)이나 큐브샛(장난감 큐브 크기의 위성)을 만드는 사람이 꽤 있다. 만드는 법은 인터넷에 오픈소스로 공개돼 있다. 그러나 발사체가 없으면 위성을 우주로 보낼 수 없다. 페리지는 개인 위성 발사 대행 서비스를 할 계획이다. 초소형 위성 여러 개를 단일 모듈로 묶어서 일종의 ‘위성 아파트 단지’를 쏘아 올린다. 낱개로 띄우면 통신 기능 등 장비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우주 쓰레기가 될 수 있어 택한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현재 탑재물 kg당 2,000만원 정도인 발사 비용을 100만원 정도로 낮출 수 있다. 누구나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우주에 나만의 위성을 띄울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페리지는 로켓 만드는 법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려고 한다. 기술의 신뢰도와 안전성을 최대한 확보한 뒤 단계별로 공개 가능한 범위 안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로켓은 민감한 군사기술이기도 해서 개발이나 발사에 법적 규제가 많다.
신동윤 대표는 “우주 기술의 혜택은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페리지가 할 개인위성 발사 대행은 외국에도 없는 사상 초유의 서비스”라고 말했다. 스페이스X가 NASA와 우주 택배 계약을 했지만, 개인을 위한 대행 서비스는 아직 없다. “사람들이 이 서비스로 무엇을 할지는 모르죠. 우주에서 기상 사진 찍기? 우주 장례식? 우주 연애? 저희도 기대가 됩니다.”
문제는 개발 예산이다. 사운딩 로켓 개발에만 15억, 2020년 상용화까지 2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 4,200만원으로 회사를 차렸고, 멤버들이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초소형 위성 발사체 개발 등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고 있다. 올해 정부 지원금 3억원을 받았지만, 턱없이 모자란다. 페리지는 투자자를 기다리고 있다.
모두의 우주 시대를 꿈꾸는 페리지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실패할 수도 있지만 야무지게차근차근 전진 중이다. 스페이스X의 팰콘9에 들어간 멀린 엔진은 취미로 로켓을 만들어 모하비 사막에서 쏘아 올리던 아마추어 엔지니어의 작품이다. 페리지라고 못하란 법은 없다.
2)세상에 없던 생명체를 만든다
고려대 학부생들로 이뤄진 KUAS
7년간 합성생물학 경진대회 참가
누구나 생명체 회로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 제작, 금상도 받아
합성생물학대회 나가는 대학생들
합성생물학은 생명의 구성요소, 장치, 시스템을 새롭게 설계ㆍ제작하거나 기존의 생명시스템을 사용자 목적에 맞게 재설계하는 분야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거나 변형한다. 전자회로를 설계하고 부품을 조립해서 전자장치를 만들 듯, ‘바이오브릭’(표준화한 유전자부품)을 사용해 만든다.
매년 가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리는 아이젬(igem.org)은 합성생물학 경진대회다. 2004년 MIT대학에서 시작해 지금은 전세계 30개국 이상에서 300여 팀 5,000여 명이 참가하는 국제대회로 성장했다. 대학생이 중심이지만 고등학생이나 일반 시민과학자도 참가한다. 의료, 건강, 식품, 환경,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등 여러 부문에서 실력을 겨룬다. 박테리아가 색깔을 내게 만들어서 그걸로 그림을 그리는 등 바이오아트 부문도 있다. 이 대회는 전문가 집단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합성생물학을 일반에 널리 소개하고 대중화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학부생 동아리인 고려대 합성생물학회(KUAS)는 2009년부터 매년 아이젬에 참가하고 있다. 27~31일 열리는 올해 대회는 미생물과 효소로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전지 프로젝트를 갖고 나간다. 생명공학과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학생 10명이 팀을 이뤘다. 사용하는 미생물은 슈와넬라 박테리아. 전자를 체외로 전달하는 능력을 가진 이 박테리아가 한천을 먹고 전기를 생산하도록 한천분해 효소를 집어 넣고, 환원된 유기물을 산화시키는 효소를 통해 전기를 생산하는 두 가지 방식을 합친 프로젝트다. 지난해 아이젬에서 KUAS는 전문지식이 없어도 생명체 회로를 구성할 수 있도록 물질 대사 경로를 알려주는 소프트웨어를 제작해 금상을 받았다. 생명과학대 최인걸 교수의 지도를 받고 있다.
아이젬 참가자들은 프로젝트를 아이젬 위키 페이지에 공개하게 돼 있다. 사용할 유전자 부품은 주최측이 수집해서 운영하는 표준 부품 목록에서 골라 쓰고 개발한 신규 부품은 등록해서 누구나 쓸 수 있게 공개한다. 오픈소스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생체 DNA를 다루는 합성생물학은 안전이나 윤리 문제가 민감하다. 아이젬은 공익성과 안전을 위해 윤리 규정을 마련해놓고 있다.
KUAS는 최인걸 교수의 계산 및 합성생물학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며 대회를 준비해 왔다. 이번이 아이젬 참가 두 번째라는 정경훈 회장은 “1년 동안 여럿이 모여서 하는 나름 대형 프로젝트다 보니 시간을 많이 뺏기고 팀원 간에 문제가 생기는 등 힘들 때도 있지만 고생한 만큼 보람도 크더라”며 “지난해에 컴퓨터 기초부터 배우면서 만든 소프트웨어로 출전해 상을 탔을 때 정말 기뻤다”고 말한다. 생명정보학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실험실과 책에 있는 지식을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활동으로 연결하고 싶어서 아이젬에 참여한다”고 말한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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