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 국정감사에서는 ‘송민순 회고록’ 파문에 대한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의 발언을 두고 여야의 해석이 극명하게 갈렸다. 통상 비공개로 진행되는 국회 정보위 국정원 국감은 여야 간사 의원들의 전언에 따라 감사 중 발언이 공개된다. 이 점을 적극 활용한 여당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책임을 강조하는 취지의 이 원장 발언을 주로 전했다. 반면 야당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국감의 최대 쟁점은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북한에 의견을 물어보자고 제안한 것을 문 전 대표가 최종 결론 낸 것이 맞느냐’라는 질문에 이 원장이 “맞다”고 답했는지, 아니면 “맞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는지 여부였다. 전자는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 수장인 이 원장이 나름의 판단 근거를 가지고 문 전 대표의 책임을 사실상 확신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해당 질문을 처음 던진 새누리당 간사 이완영 의원은 이날 국감 후 브리핑을 통해 “무슨 근거를 댄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이 원장이) ‘맞다’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정확하게 이 원장이 뭐라고 말했는지 밝혀달라’는 기자들의 거듭된 요청에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나)? 속기록이 없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에 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은 “야당 의원들이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하냐고 했더니 이 원장이 ‘자료는 없다’고 하면서 ‘개인적으로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한 말’이라고 말했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후에도 두 간사 의원은 같은 취지의 설명을 10여분 넘게 반복하며 자신의 주장만 끝까지 고집했다.
국민의당 소속 정보위원인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두 당의 상이한 주장에 대해 “이 원장이 노련하게, 여당이 들으면 자기 편드는 것처럼 하고 야당에도 여지를 주는 식으로 말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문 전 대표 관련 발언에 대해선 “이 원장이 ‘개인적으로 볼 때 그러하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여야가 접점을 찾지 못한 이 원장 발언의 진위는 정보위 속기록이 추후 공개되면 사실관계가 확인될 전망이다. 만약 여당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야권 대선 주자를 고의로 흠집냈다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여당 주장이 사실일 경우 민주당이 과도하게 문 전 대표를 보호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전망이다.
여야의 정치적 해석이 엇갈린 것과 별개로, 이 원장의 발언은 그 자체로 국정원의 정치관여 시도로 해석될 공산이 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 대선 당시 댓글 사건으로 큰 곤욕을 치렀던 국정원은 그동안 “국내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날도 이 원장은 “국정원이 정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국정원 운영의 요체”라고 말했다고 김 의원은 전했다. 그러나 이 원장은 국감이 끝나갈 무렵 ‘오늘 발언으로 국내정치에 개입하는 듯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야당 의원들의 지적에는 “사견을 물어보니 개인적 의견을 답한 것뿐인데 내 진의가 왜곡됐다면 언론이 바로 잡아야지…”라며 책임을 회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정보위원들은 “여당 이완영 간사의 거짓 브리핑으로 최순실 비선 실세 의혹을 덮고 색깔 논쟁으로 몰고 가려는 새누리당의 의도에 경고를 보낸다”며 이 의원의 정보위원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민주당의 주장이 허위”라며 “나는 국감에서 들은 대로 브리핑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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