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와 대학가가 맞닿아 있는 서울의 한 동네카페 앞. “스터디를 하실 고객님은 죄송하지만 다른 매장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이 출입구에 붙어 있다. 한적한 공부 장소를 찾아 이곳까지 온 대학생 A씨는 다소 불쾌한 기분을 느끼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학교 앞에는 대형 커피전문점이 이미 여럿 있지만 자리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노트북이 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또 다른 스터디 공간을 찾아나선 A씨는 “공짜로 앉아 있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커피 주문해서 마시는데 공부는 안 되고, 수다 떠는 건 된다는 게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녀들의 학부모 모임을 갖기 위해 동네의 대형 커피전문점을 찾은 B씨는 카페를 가득 메우고 있는 취업준비생들 때문에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설령 자리가 있다 해도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조용한 분위기에 엄마들끼리 수다를 떨기도 부담스러웠다. B씨는 “언제부터 카페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곳이 아닌 공부하는 곳이 됐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어떤 때 가보면 오전에 앉아 있던 사람이 저녁에 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더라고요.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온 종일 앉아 있는 건 상도의에도 어긋나는 것 아닌가요.”
눈총 받는 카공족 “어디로 가오리까”
카페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일컫는 ‘카공족’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카페의 공간 성격이 급격히 변화했다. 카페를 더 이상 차를 마시며 담화하는 사교공간이라고 주장하기 어려워졌을 정도로 학습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여전히 카페를 사교와 교류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커피는 학습을 위한 공간대여료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잖이 갈등이 생겨나는 이유다.
옆자리 손님이 떠든다거나 시끄러운 소음을 낸다며 불편을 호소하는 카공족들과 그럴 거면 공부는 도서관 가서 하라는 항변은 기본. 자리를 둘러싼 쟁탈전도 치열하다. 학생들로선 오랜 시간 앉아 공부할 게 아니라면 그 비싼 커피를 사먹을 이유도 없다는 입장이지만, 음료도 시키지 않은 채 자리만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고발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벌어지는 단골 소재다.
네 살 아이와 함께 브런치를 먹으러 대형 커피전문점을 찾았던 주부 정모(36)씨는 “아이가 시끄럽게 떠들며 돌아다닌다. 주의시켜 달라”는 말을 카공족에게 듣고 불쾌했던 경험이 있다.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해야 하는 건 상식이지만, 쥐 죽은 듯 아무 소음도 내지 말라는 건 좀 지나친 것 같아요. 혼자 공부하러 와서 4인용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거나, 자리 맡아두고 점심 먹으러 다녀오거나 하는 사람들이 더 문제 아닌가요.”
하지만 대학생들이 카페를 스터디 공간으로 선호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적절한 소음이 있기 때문. 취준생 하모(27)씨는 “도서관에서는 책장을 넘기거나 입으로 따라 읽는 등의 소음도 부담스러운데 카페는 개방돼 있고 소음도 거슬린다기보다 편안하게 느껴지는 수준”이라며 “지나치지만 않으면 소음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사람이 모여 스터디를 할 때나 글 쓰기를 할 때 특히 카페가 좋다”면서 “사각사각 소리 내며 글을 쓰거나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려도 되고, 서로 합평을 할 때도 부담스럽지 않아 카페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내가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도 카페의 장점 중 하나라고.
카페 이용시간 “3시간이 적절”
‘노(NO) 스터디족’이라고 써 붙여 놓을 정도로 카공족들과 카페 점주 사이의 갈등도 만만치 않다. 회전율이 낮아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게 일차적 원인이지만, 카페 분위기를 너무 가라앉힌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취준생들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주인이 카운터에 앉아 노려보고 있는데, 두 테이블 건너에서 한나절씩 공부에 전념하고 있으려면 상당한 호연지기가 필요하다.
취준생 김모(26)씨는 “그래서 전 지점이 직영으로 운영되는 스타벅스가 카공족의 넘버원 카페”라고 말했다. 가맹점주가 있어 영업관리를 치밀하게 하는 프랜차이즈 카페와 달리 눈치가 보이지 않고, 전원 콘센트와 무료 와이파이까지 제공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개인이 하는 작은 카페는 공부하러 가기 좀 힘들고요. 가맹점으로 운영되는 카페는 스타벅스에 자리가 없을 때 주로 가긴 하지만, 오래 있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카페 이용을 둘러싼 카공족과 일반인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려면 카페 이용시간과 규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편입을 준비 중인 대학생 신모(24)씨는 “아주 비양심적인 행동만 하지 않으면 카페에서 공부를 하든 수다를 떨든 괜찮지 않냐”면서 “끼니와 끼니 사이 정도로만 이용하면 합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봐도 자리 맡아두고 점심 먹으러 다녀오는 건 양심불량 같아요. 서너 시간 정도, 아무리 길어도 다섯 시간은 넘기지 않는 게 매너 아닐까 싶네요.”
대학생들의 의견은 대부분 커피 한 잔당 3시간 정도에서 합치를 보였다. “카페에서 2시간 넘어가면 집중력 달린다”, “오전 10시에 가서 저녁 6시에 나온 적 있지만, 2~3시간 간격으로 음료나 푸드를 시켰다” 등의 의견이었다. 취준생 방모(27)씨는 “스터디 모임에서 단체로 카페에 갈 때마다 자기는 먹고 싶지 않다며 주문을 하지 않는 친구가 있는데 솔직히 좀 민망하다”며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 것 자체보다 이런 식으로 양심 없이 이용하기 때문에 카공족들이 욕을 먹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카공족들의 성지 스타벅스는 이 난관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스타벅스 홍보팀 관계자는 “고객의 삶에서 집과 학교, 집과 회사 다음 가는 제3의 공간이 되는 걸 모토로 하기 때문에 카공족들이 편안하게 카페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적극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공족들로 인한 다른 고객들의 불만은 “공간효율화를 통해 해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테이블을 놓거나 창가쪽에 1인석 배치를 대거 늘리는 등 많은 분들이 각자의 용도에 맡게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변화를 주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모텔로, 술집으로, 독서실로
카페만 학습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 아니다. 모텔도 최근 스터디 공간으로 각광받는 곳이다. 대학생 공모(25)씨는 최근 공모전 때문에 학과 친구들과 밤샐 일이 있어 학교 앞 모텔에 간 적이 있다. 숙박이 아닌 대실 개념으로 2인 기준 4시간에 2만5,000원을 냈다. ‘야놀자’ 같은 숙박앱을 이용해 방을 예약할 경우, 인원이 1명 추가 될 때마다 금액이 올라가지만 대실 시간 연장 같은 프로모션 혜택을 볼 수 있어 대학생들이 많이 이용한다. 남녀혼숙을 이상한 시선으로 볼 수도 있지만, “집단 스터디나 모의면접, 공모전처럼 여러 명이 모여 해야 하는 스터디가 많아 대학 근처 모텔들은 대부분 해주는 편”이라는 게 공씨의 설명이다.
학원가에서는 낮 시간대 빈 공간으로 놀고 있는 술집도 스터디 공간으로 십분 활용되고 있다. 영어학원 등이 ‘강의 전후 스터디 공간 제공’을 조건으로 내걸어 수강생을 모집한 후 ‘낮의 호프집’을 공부방으로 사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취준생들의 불안을 반영하듯 모든 것이 ‘스터디 모임’으로 구성되는 게 요즘 트렌드이다 보니 영어 공부도 학원강사가 수강생들끼리 스터디를 짜주면 삼삼오오 모여 호프집에서 2시간가량 함께 하는 식이다.
스터디 공간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높아지자 칸막이 독서실도 변신에 나섰다. 고급카페처럼 꾸미거나 공간 구조를 다양화한 프리미엄 독서실이 최근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전국 사설 독서실 5,000개 중 350개가 프리미엄 독서실일 정도다. 독서실이라고 하면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중고생들이나 가는 곳이라는 게 통념이지만, 프리미엄 독서실은 청소년과 성인의 이용비율이 7 대 3에 달한다.
2012년 처음 생긴 토즈(TOZ)는 프리미엄 독서실 350개 중 200개를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로 고정석과 유동석, 1인실과 소셜 스페이스, 오픈 스터디 룸 등으로 공간 유형을 다양화했다. 커피 등 음료를 자유롭게 마실 수 있는 스마트카페와 준비해온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푸드존까지 갖췄다. 카페처럼 적절한 백색소음이 있는 열린 공간과 혼자만의 고립된 공간을 오가며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이용료는 월 21~25만원, 일 1만3,000원으로 커피 한 잔 값보다는 비싸지만, 1층의 스마트카페는 하루에 5,000원만 내면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이용할 수 있어 카페에서 눈치 보기 싫은 취준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이밖에도 윙스터디, 제이알스터디 등 독서실과 카페의 형태를 변용한 스터디룸, 스터디카페도 대학가나 학원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오늘도 하이에나처럼 공부할 곳을 찾아 헤매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들 덕분에 스터디 공간 비즈니스는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은 블루오션이 됐다. 토즈는 전년 대비 46% 성장률을 보였다.
세상의 어떤 공간에서라도 공부하겠다는 기세로 스터디 장소를 찾아 다니는 젊은이들을 보면 왜 이토록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왜 멀쩡한 집과 도서관을 놔두고 카페와 술집과 모텔과 스터디룸을 찾아 다니느냐는 질문은 일단 보류하는 것이 좋다. 방학도, 주말도 없이, 온갖 스터디 모임으로 자신을 옭아맨 채 공부, 또 공부를 해야만 하는 현실과 그 사회적, 경제적 원인부터 분석할 필요가 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변해림 인턴기자
기상 시간 체크까지… 생활 스터디에 빠진 취준생
오전 7시 50분 공시생 김모(28)씨의 손이 분주하다. 책과 문제집은 책상 위에 미리 준비돼 있다. 노트북의 전원을 켠 다음 화상 공유가 가능한 구글 ‘행아웃’에 접속해 ‘10시간 채우기 스터디’ 방으로 들어갔다. 7시 55분 스톱워치의 버튼을 누르고 채팅방에 인증한다. 김씨와 거의 동시에 다른 스터디원 3명도 본인의 스톱워치를 인증했다. 화상 회의를 지원하는 행아웃으로 ‘캠터디’(웹캠을 이용한 스터디)를 하는 것이다. “서로 감시를 하니까 강제로라도 공부를 하게 되죠. 의지력 약한 저한테는 딱이에요. 집에서 공부하니까 도서관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요.”
구립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이모(29)씨는 공시생끼리 모여 밥을 먹는 ‘밥터디’를 운영 중이다. 도서관 지하 식당에서 11시 30분에 모여 30분 안에 밥을 먹고 식후 수다는 10분으로 제한했다. 밥 먹는 모임을 굳이 스터디라고 하는 이유를 묻자 이씨는 “다들 밥터디라고 하니까 별 생각이 없었다”면서도 “밥 먹으면서 정보 공유도 되니까 일종의 스터디 모임 아닌가”라고 답했다. “지나치게 친해지면 공부에 방해될 수 있으니 서로 조심하고, 적당히 격려도 되니깐 밥터디를 한다.”
청년 실업난이 깊어지면서 공부를 의미하는 ‘스터디’는 취준생 모임으로 의미가 변했다. 같이 공부를 하는 모임이라기보다는 스터디 자체가 그냥 문화가 되고 있다. 이노션 월드와이드가 분석한 빅데이터에 의하면 지난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기상/출첵 스터디(3,508건), 밥터디(1,940건), 인증/자율 스터디(1,491건) 글들이 소셜 데이터에 올라왔다.
생활 스터디가 확산되는 가장 큰 이유는 취업 준비생들의 외로움이다. 공시족의 경우는 2년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는 수험 생활을 예상하고, 사기업에 도전하는 취준생들 또한 ‘n수’를 당연하게 여긴다. 수험생활이 길다 보니 외로움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당연히 심하다. 소셜 데이터에서 혼자(3,775건), 외로움(954건), 의지하다(425건) 등의 연관어가 높게 나타나는 데서도 확인된다. 처지가 비슷한 청년들끼리 생활을 점검하고 동기를 부여해 고독한 수험생활을 견디려는 몸부림이다.
그러나 외로움을 덜어낸다고 해서 수험생활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유대관계가 지나치게 돈독해지면 오히려 수험생활에 독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9급 공무원 2차 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박모씨는 “스터디를 하되 최대한 친해지는 것을 피하라”고 조언했다. “특히 연애는 비추예요. 스터디원들과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참여하는 것만 성실히 해야 합니다.” 스터디에서 위안을 얻는 것에도 금도와 균형이 있다는 말이다.
변해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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