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갈등으로 리더십에 큰 상처
법인 이사회 “책임져야” 등 돌리고
정치권도 잇단 의혹 제기하자
학교 이미지 실추 감당 못해 판단
이대 첫 임기 못채운 불명예 퇴진
84일에 걸친 학생들의 퇴진 요구에도 꿈쩍도 않던 최경희(54) 이화여대 총장이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화여대 사태가 대학 재정지원사업(미래라이프대) 논란이라는 학내 문제를 넘어 정권 비선 실세와의 결탁 시비로 번지면서 더 이상 학교 이미지 실추를 감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화여대 130년 역사상 4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한 총장은 그가 처음이다.
미래라이프대 반대 학생들의 장기농성 사태는 ‘불통의 리더십’이 문제였다.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로 불리는 최순실(60)씨의 딸 정유라(20)씨 특혜 의혹은 이화여대의 자존심을 근본부터 허무는 문제였다.
최 총장은 2014년 8월 취임 당시만 해도 ‘1980년 이후 최연소 총장’ ‘개교 이래 첫 이공계 출신 총장’이라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이화여대의 선장을 맡았다. 취임과 함께 최 총장은 대학의 곳간을 든든하게 하는 일을 학사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취임 1년 만에 신산업융합대학을 신설하고 교육부가 추진한 프라임(산업연계교육활성화)사업과 코어(인문역량강화) 사업 예산 80억원을 잇따라 따내는 수완을 보였다.
대학본부의 ‘재정확보 올인’ 방침은 곧 불통 시비에 휩싸였다. 학생들 의견을 무시하고 “학문의 전당을 돈의 노예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7월 말 미래라이프대 사업에 반대하며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자 경찰력 1,600명을 학내에 동원해 강제 해산을 시도한 일은 최 총장의 사퇴가 공론화되는 계기였다. 학교는 사업을 백지화했지만 “학교 측이 중요 사업을 포기한 이상 학생들이 인사권에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여론에 최 총장은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정씨 특혜 의혹은 이화여대에 차원이 다른 충격을 안겼다. 지난달 말부터 언론에서는 정씨가 2014년 승마 특기생으로 입학하는 과정에서 학교가 그를 뽑을 것을 지시했고, 출석 없이도 학점을 받을 수 있게 학칙을 바꿨다는 의혹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 나왔다. 여기에 정씨를 부정입학시킨 덕분에 이화여대가 교육부 지원사업을 싹쓸이할 수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투명성이 자랑거리였던 이화여대는 한순간에 ‘순실대학’이라는 정치 유착의 장으로 전락했다.
결정적으로 사태를 관망하던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회가 지난 7일 열린 회의에서 최 총장에 등을 돌리면서 최 총장이 사퇴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가 이 자리에서 총장 책임론을 제기하자 최 총장은 “학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니 마무리를 잘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명수 이사장은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본인이 사표를 냈으니 일단 빠른 시일 내에 이사회를 열어 수리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이제 큰 고비를 넘겼다고 보면 된다”며 사퇴를 기정사실화했다.
이사회가 최 총장의 사표를 공식 수리하면 법인 정관에 따라 송덕수 부총장이 총장 직무대행을 맡게 된다. 대학 관계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의혹에 학교 궁지에 몰리면서 (총장이) 학교 책임자로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며 “신임 총장이 선임될 때까지 당분간 부총장 직무대행체제로 행정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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