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국방장관이 20일(현지시간) 안보협의회의(SCM)에서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상시 순환배치를 검토키로 한 것은 양국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우리 정부로선 대북 억지력을 강화하면서 국내 일각에서 제기되는 핵무장론이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을 대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미 측으로서는 전략무기의 한반도 주둔에 따른 비용 등 과도한 부담을 피할 수 있다. 다만 ‘상시 순환배치’라는 용어의 의미가 불분명해 향후 협의 과정에서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양국의 이번 합의는 ‘순환’이라는 꼬리표를 달긴 했지만, 전략자산을 한반도와 주변 해역ㆍ상공에 배치해야 한다는 국내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하는 측면이 있다. 지난달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응해 B-1B 전략폭격기 한반도에 투입됐지만 ‘에어쇼’라는 비난 여론만 들끓었던 게 이번 합의의 계기가 됐다. 최대무장, 최고속도의 폭격기라던 자화자찬과 달리 주요 무장을 하지 않은 채 수분간 공중 비행만 하다 돌아갔고, 괌 기지에 강풍이 분다는 이유로 출격 일자도 하루 늦추는 해프닝까지 보여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이 도발하면 부랴부랴 어떤 자산을 투입할지 논의하던 것과 달리, 한반도에 위협적인 배치돼 있으면 도발을 억제하는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상시 순환 배치의 의미를 “위기 상황에 즉응할 수 있는 전략자산을 투입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 전략자산이 붙박이로 한반도나 인근 해역에 배치되지 않더라도, 유사시 신속하게 전개해 상시 배치의 효과를 낼 수 있으면 족하다는 의미다.
문제는 배치 지역이 어디까지 포함되느냐다. 2~3시간을 즉응 가능한 범위로 본다면, 미 전략자산의 상시 순환 배치라는 이번 합의는 기존 배치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괌의 경우 전략폭격기로 2~3시간이면 한반도에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미국은 루이지애나주 공군기지 소속 B-1BㆍB-2ㆍB-52전략폭격기를 이미 괌에 전진 배치해 놓고 있다. 주변국 일본에 항공모함이나 핵잠수함을 배치하고서 한반도 방어를 위한 것이라고 강변할 수도 있다. 미국이 지난 3월 발사 장면을 공개한 ‘미니트맨-3’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경우, 캘리포니아 반데버그 공군기지에서 발사해도 요격준비와 비행시간을 합쳐 1시간이면 평양을 타격할 수 있다. 국방부 당국자는 “아직은 즉응이라는 개념이 분명치 않기 때문에 앞으로 미측과 구체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말을 아꼈다.
특히 전략자산 배치에 대해 합의한 것이 아니라 검토하는데 그치면서 SCM의 빛이 바랬다. 내달 대선을 앞둔 미 측이 차기 정부에 선택지를 남겨놓기 위해 이처럼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소식통은 “미국이 전략자산을 상시 배치하려 했다면 굳이 순환이나 검토라는 용어를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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