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보다 새판짜기에 전력”
동반 탈당 이어질 진 미지수
여야 ‘제3지대론’ 가속화 할 듯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전 상임고문이 20일 ‘탈당’이란 강수를 두며 정치복귀를 선언했다. 2014년 7ㆍ30 보궐선거 패배 직후 정계를 은퇴하고 전남 강진에서 칩거한 지 2년여 만이다. 정치재개 일성으로 ‘개헌을 통한 제7공화국 체제’를 제시, 개헌을 고리로 한 정치권의 제3지대론 등 정계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손 전 고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와 경제의 새판짜기에 저의 모든 것을 바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이 일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며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 당 대표를 하면서 얻은 모든 기득권을 버리겠다. 당적도 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한민국은 지금 무너져 내리고 있다. 1987년 체제가 만든 제6공화국은 그 명운을 다했다”며 “현재의 체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더 이상 나라를 끌고 갈 수 없다. 이제 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고 개헌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제가 꼭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다. 명운이 다한 제6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는 게 저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결기를 보였다.
손 전 고문의 정치복귀는 예상된 수순이었지만 탈당 선언은 의외라는 게 정치권의 반응이다. 당적을 유지한 채 개헌과 제3지대론을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친손계 한 의원은 “제7공화국 체제를 만들 수 있는 동력을 얻기 위해선 자신의 모든 걸 내려놔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을 정계복귀의 명분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방식에 불복해 탈당했던 그가 또다시 탈당을 감행한 것을 비춰볼 때, 내년에 만 70세가 되는 만큼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친손계 의원들조차 탈당 카드는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들은 기자회견 직전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손 전 고문의 탈당을 극구 만류했다. 김병욱 의원은 “손 전 고문이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하자’면서 동조 탈당을 만류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찬열 의원은 이날 “나는 손 전 고문이 공천을 줘서 3선까지 했다. 손 전 고문을 따르겠다”며 탈당을 시사했다. 다만 이 의원의 행보가 당장 친손계 의원들의 연쇄탈당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시기적으로 제3지대론이 본궤도에 오르고 당내 대선구도가 ‘문재인 대세론’으로 굳어진 다음 탈당을 결행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탈당을 선언한 손 전 고문의 기자회견장에는 김병욱 의원 등 일부만 얼굴을 비췄다.
손 전 고문의 정계복귀는 비박근혜ㆍ비문재인 세력을 중심으로 거론돼 온 제3지대론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한 제3지대론을 주장하고 있고, 김종인 민주당 전 비상대책위 대표도 당내 비문계 의원들과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론에 군불을 지피고 있다. 여권에서도 정의화 국회의장과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 비박계 잠룡들이 분권형 개헌을 통한 ‘연정’에 동참할 세력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개헌의 각론이 다양하고, 중립지대에서 제3지대론을 주도하려는 경쟁자가 많다는 점은 제약 요인이다. 일각에선 “송민순 회고록 등을 둘러싸고 박근혜정부와 문재인 전 대표 등 민주당이 정면 대결하는 상황에서 손 전 고문이 야권의 재편과 개헌을 주장하는 것이 주목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회경 기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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