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봉쇄할수록 상황 악화”
대화 강조 갈루치 등 美협상파
차기 정부에 제안사항 찾기 노력
한국은 대화 여지도 없는 상태로
“한·미 대북공조 탄탄” 말만 반복
미국의 대북 협상파들이 북한과의 접촉을 늘리며 북핵 대화 필요성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어 차기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 변화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상 북한 정권교체에 초점을 맞춰온 박근혜정부가 제재 일변도의 강경 드라이브만 걸다 북핵 대화 국면에서 소외돼 한반도 정세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 22일 양일 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북한 한성렬 외무성 부상과 장일훈 유엔 주재 차석 대사 등 북한 당국자들을 만난 미국 인사들은 그간 ‘대북 협상론’을 주장해온 북핵 전문가들이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제네바 합의를 이끈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는 최근에도 통일준비위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북한을 봉쇄할수록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며 협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회동에 참석한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 산하 비확산센터 소장이나, 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원 과장 등도 북한과 자주 접촉하며 대화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이들 대화파가 재야에 포진해 있어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직접적인 대북 대화 의중이 실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걸 과장도 22일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정부 외 인사로서 새 행정부에 제안할 수 있는 (대북 정책) 관련 사항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회동의 의미를 말했다. 미 대화파들이 차기 정부의 대북 정책을 견인하기 위해 북한의 최근 동향과 입장을 청취한 자리인 셈이다. 시걸 과장은 “개인적 견해로는 일부 진전이 있었던 같다”고 회동 결과를 설명했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 대화파들이 북한의 4,5차 핵실험을 통해 북핵 위기가 고조될수록 목소리를 높이고, 대화 중재를 위한 행동에도 직접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북한통’ 빌 리처드슨 전 유엔대사의 측근이 지난달 북한을 방문한 것이나, 제인 하먼 우드로윌슨센터 소장이 대북 협상론을 주장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초당파적 외교 싱크탱크인 미 외교협회(CFR)가 지난달 출간한 대북 특별보고서에도 전향적인 대북 대화 프로세스가 담겼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 같은 목소리를 깎아 내리는 데 급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교부는 23일 말레이시아 북미 회동에 대해 “미국 정부와 전혀 관계 없는 것”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외교부는 그간 미국에서 대화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소수 의견”으로 치부했고 “미국과의 대북 제재 공조는 흔들림 없다”는 말만 반복해왔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가 북한에 강경한 목소리를 내더라도 최소한의 대화 가능성은 열어두는 것과 달리, 우리 정부는 ‘오로지 제재’만을 외치는 형국이다. 이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정권교체에 초점을 두고 제재에 올인 하는 상황이어서 외교 당국도 대화의 여지조차 남겨 두지 않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한미간 대북 제재 공조에 대한 우리 정부의 믿음이 오바마 정부가 ‘전략적 인내’란 이름으로 북핵 문제를 후순위로 밀어둔 데서 나온 착시란 비판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내년 1월 미국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대화파의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될 소지가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북한의 핵능력이 미 본토 타격 수준까지 고도화하는 상황이어서 오바마 정부 때와 달리 북핵 문제가 우선적 과제로 떠올라 결국에 중국의 중재 등을 통해 북한과 마주앉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제재를 포기하고 대화를 하자는 것은 안될 말이지만, 제재의 목적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이끄는 것이란 점에서 볼 때 미 차기 정부에서 대화 가능성은 열려 있다”며 “우리도 대화를 위한 물밑 노력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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