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골목을 찍은 사진엔 아이들이 있다. 별다른 놀이기구 없이 지형지물만으로 기력이 쇠할 때까지 노는 아이들. 그 곁엔 한 눈은 아이들에게 다른 한 눈은 서로를 향한 채 대화하는 어른들이 있다. 그들 앞에 놓인 약간의 주전부리까지 합치면 비로소 골목 풍경의 완성이다.
지금은 주차구역 의무화로 골목이 필로티(건물 상층을 지탱하는 기둥) 천국이 됐지만,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도담가’에선 옛 마을의 모습을 일부나마 찾을 수 있다. 각자 결혼해 가정을 꾸린 자매가 함께 모여 지은 도담가는 두 채의 집이 긴밀하게 연결된 마을 안의 마을이다.
중정 두고 마주 보는 두 집
각자 아파트에 살 때도 두 가족은 네 집 내 집 가리지 않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오갈 만큼 친밀했다. 호칭도 처형이 아닌 “누나”, 형부가 아닌 “오빠”다. 아파트 생활에 딱히 불편함을 느끼진 않던 이들이 집을 짓기로 결심한 건, 동생의 남편인 이창길씨가 마음에 드는 땅을 발견하면서다.
“초등학교 동창이 집 짓겠다고 산 땅을 보여줬는데 너무 좋아 보이는 거예요. 바로 옆에 공원이 있고 조금 더 가면 양떼목장까지, 아이들에게도 좋겠더라고요. 바로 아내랑 누나(처형), 형님에게 얘기했죠.”
처음 짓는 내 집이지만 제주도에서 숙박업을 하는 이창길씨 덕에 다른 집처럼 우왕좌왕할 필요가 없었다. 이씨는 가족 구성원들을 각 2시간씩 인터뷰해 어떤 집을 원하는지 들은 뒤 펜션 작업을 오래 함께 해온 고영성 건축가(포머티브건축)에게 녹음 파일을 넘겼다.
“가족분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게 넓은 마당이었어요. 바깥으로 향한 마당이 아니라 가족들끼리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중정이요. 그런데 중정은 집 내부에 마당을 품은 형태라 외벽의 면적이 늘어나기 때문에 통상 시공비가 15% 정도 상승합니다.”
집의 형태도, 예산도 모든 것이 중정에 맞춰지게 됐다. 건축가는 7mx7m, 약 15평 규모의 중정을 가운데 배치한 뒤 ‘ㄱ’자 모양의 집 두 채가 그것을 감싸는 형태로 디자인했다. 양쪽 집 거실이 중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구조다. 전면창이라 프라이버시가 염려될 법도 하지만 워낙 낯가림이 없는 가족들이라 커튼도 곧잘 열어 놓고 산다. 양쪽 집의 부엌이 만나는 지점에는 공동창고를 두어 김치냉장고, 청소기, 건조기 등 같이 쓰는 가전들을 보관했다.
집의 주인공 격인 중정에는 붉은 벽돌을 깔고 수선화, 수국 등을 심었다. 식물을 좋아하는 이씨의 지휘 아래 벽돌 사이에 일일이 이끼를 심느라 고생했다며 아내가 투덜댔다. “전 사실 식물에 관심이 1도 없거든요.(웃음) 그런데 둘째 아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꽃과 이끼에 매일 물을 주는 거예요. 그걸 보고 집 짓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가족들은 바비큐 파티를 하는 것 외에도 야무지게 중정을 활용하고 있다. 봄에는 여기에 현수막과 만국기를 걸어 어머님의 환갑을 축하했고, 언니 아들의 백일 때는 긴 테이블을 놓고 뷔페 파티를 열었다.
집은 형태 상으로는 듀플렉스 하우스이지만, 양쪽이 똑같은 땅콩집과는 달리 가족 구성에 따라 두 채가 약간씩 다르다. 초등학생 아들 둘이 있는 동생네는 1층에 부부 침실과 거실, 2층에 두 아들의 방을 뒀다. 중정에 면적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느라 방도 거실도 딱 필요한 면적만큼 간편하게 짰다.
“우린 방에서 뭘 많이 하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아파트에서 살며 깨달은 건 ‘큰 집은 곧 노동’이라는 거예요. 아들들 방도 다 가구 크기에 맞춰서 최소한으로 했어요.” 아들이 성인이 되면 어떻게 하냐는 물음에 “어차피 스무 살 되면 집에 잘 안 들어온다”는 이씨의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2층엔 욕실을 없애는 방식으로 ‘최소한’의 소통을 꾀했다.
골목 커뮤니티, 집에서도 가능
언니네 가족의 소소한 로망도 세심하게 반영됐다. 현관을 열면 바로 보이는 주방의 싱크대 위엔 중정을 향해 긴 창이 나 있다. “집을 지을 당시 임신 중이었는데, 결혼 10년 만에 생긴 아이라 온갖 기대감으로 부풀었어요. 그 중 하나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며 아이가 마당에서 뛰노는 모습을 보는 거였어요.”
남편의 로망은 좀더 특이하다. 그가 그린 그림은 마치 “고양이처럼” 위에서 가족들을 내려다보는 것. “내 공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채우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노는 걸 지켜볼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생각했죠.” 2층에는 책과 LP로 채워진 남편의 작업실과 아이방이 배치됐다. 작은 테라스도 하나 있어, 거기 앉으면 그야말로 온 집을 관망할 수 있다.
중정은 두 가족의 만남의 장 역할을 충분히 하지만 건축가는 추가적인 연결고리를 구상했다. “전체적으로 동선이 순환되면 좋겠다 싶었어요. 1층 공동창고를 통해서도 오갈 수 있지만 2층에도 만나는 지점이 있다면 이 활달한 가족에게 더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2층에선 테라스로 연결된다. 양쪽 집에서 문을 열고 나와 각자의 테라스를 지나면 그 가운데 마치 정거장처럼 만날 수 있는 방이 있다. 이른바 게스트룸으로, 손님이 자고 가기도 하고 가족이 모여 영화를 보거나 남편들끼리 맥주를 마시거나 아이들이 친구를 데려와 난장판을 벌이기도 하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좁은 실내 공간에서 할 수 없었던 모든 활동이 여기서 이뤄진다. 건축가는 두 집을 다리처럼 연결하는 테라스가 “마을의 골목”과 같은 풍경을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옛날 마을엔 골목에서 커뮤니티가 이뤄졌잖아요. 그게 7명이 사는 이 집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은 테라스에서 놀고, 어른들은 중정에서 이야기하며 아이들을 지켜보고. 일반적인 주택에서 일어나지 않는 다양한 활동, 시야, 이야기가 숨어 있는 집을 상상했습니다.”
독특한 집 구조에 가장 열광하는 건 역시 아이들이다. 초등학생 아들들은 “재미난 걸 보여주겠다”며 친구들을 데려와 1층 자기집부터 시작해 2층으로, 테라스를 지나 다시 이모네 집 2층에서 1층까지 ‘완주’하는 것이 취미다. 한 번은 둘째 아들이 2층 테라스에서 중정을 향해 소변을 보며 포물선을 관찰하다가 큰 아버지에게 적발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별다른 놀이기구가 필요 없을 정도다.
“땅콩집이 철저히 경제논리를 바탕으로 했다면 지금 지어지는 듀플렉스하우스는 커뮤니티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요즘 함께 집 짓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가 잊고 있던 소통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건축 개요>
● 대지 위치: 인천광역시 논현동 ● 대지 면적: 347.80m² ● 건물 규모: 지상2층 ● 건축 면적: 171.42m² ● 연면적: 279.93m² ● 건폐율: 49.29% ● 용적률: 60.49% ● 최고 높이: 7.9m ● 공법: 기초-철근콘크리트 매트기초, 지상-철근콘크리트 ● 구조재: 벽-철근콘크리트, 지붕-철근콘크리트 ● 설계: 포머티브건축 건축사사무소 (고영성, 이성범, 이민재, 박민주) ● 시공: 윤홍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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