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부터 목디스크를 앓고 있는 K(43)씨는 최근 통증이 심해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통증은 여전했다. K씨가 통증을 계속 호소하자 담당의사는 ‘마약패치’사용을 권했다. “마약패치요? 패치에 어떻게 마약이 들어있나요?” 마약이란 소리에 겁에 질린 K씨는 이 처방을 거부했다.
마약진통제 관리에 구멍이 생겼다. 잘못 사용하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마약진통제가 오ㆍ남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에서 ‘마약패치’로 불리고 있는 펜타닐 성분의 마약진통제가 대표적이다. 암환자, 만성통증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돼야 할 약이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한 이는 물론 진통제를 복용을 해도 무방한 목ㆍ척추디스크 환자에게 처방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정지영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약제팀 약사는 “암환자와 함께 비스테로이드항염제를 최대로 사용해도 통증조절이 되지 않는 골관절염, 하부요통, 만성췌장염 환자에게 처방된다”며 “펜타닐 성분의 패치는 다른 마약진통제처럼 의존성을 키울 수 있어 함부로 처방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지현 약사(동국대 약대 외래교수)는 “마약패치는 마약진통제를 복용한 적이 없는 환자에게 처방할 수 없는 약”이라며 “이 약은 기존에 복용하던 마약진통제 양을 계산해 그에 맞는 용량을 처방해야 할 만큼 투약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 경증환자에게도 처방돼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들은 마약패치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홍성진 여의도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마약패치를 잘못 사용하면 심할 경우 호흡정지가 일어나 사망할 수 있다”며 “패치의 경우 용량조절이 쉽지 않고 피부로 침투된 약을 제거할 수 없어 질환 초기에 패치를 처방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약사는 “최근 아무 통증 없이 발목이 부어 입원한 환자에게 마약패치를 처방한 사례가 있을 만큼 마약패치 오ㆍ남용 문제는 심각하다”며 “처방에 대한 규제와 감시가 소홀하다 보니 약물 오ㆍ남용으로 인한 범죄와 부작용으로 인한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시중에서 마약크림으로 알려진 국소마취제 ‘리도카인 크림’ 문제도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오ㆍ남용은 물론 불법유통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리도카인 크림은 의료기관에서 수술용 마취제로 사용되며, 비뇨기과에서는 조루증 환자에게 처방된다. 의사 처방 없이 사용할 수 없는 이 약이 문신 전문업소, 피부미용실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익명의 피부과 개원의는 “문신을 제거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시술 전 문신을 할 부위에 약을 발랐다는 이들이 많았다”며 “문신시술 시 마취를 하지 않으면 엄청난 통증이 발생하기 때문에 리도카인 크림을 발랐을 텐데 정품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들은 “과거 리도카인 성분이 함유된 불법 성기능 제품이 대량으로 유통된 사례가 있다”며 “마취성분이 정상 제품보다 2~4배 가량 많은 불법제품이 유통됐다면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리도카인 크림을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발작증상이 일어날 수 있고 심하면 심정지가 발생할 수 있다”며 “성분을 알 수 없는 불법제품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면 큰 일”이라고 말했다.
여성의 경우 더욱 주의해야 한다. 피부과 전문의들은 “최근 회음부에 문신하는 여성이 많은데 이 부위는 흡수력이 뛰어나 호흡곤란, 쇼크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신태영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문신시술은 피부에 상처를 내는 행위로 신체에 흡수되는 리도카인 농도가 상승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재료가 오염됐다면 위험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마취크림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심각한 부종, 발진, 가려움증 등에 노출될 수 있다”며 “특히 심장질환 환자는 사용을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마약패치, 마약크림뿐 아니라 다른 전문의약품도 치료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이 약사는 “강남, 이태원 등에서 천식치료제를 성적흥분을 일으킬 목적으로 처방 받아 남용하는 등 오ㆍ남용 문제가 심각하다”며 “자칫 잘못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마약진통제 오ㆍ남용과 불법유통을 근절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 교수는 “마약냉면, 마약커피, 마약김밥 등이 인기를 끌면서 ‘마약’이란 단어가 대중에게 친근한 단어가 됐다”며 “하지만 이들 음식은 많이 먹으면 속이 아픈 정도로 끝이 나지만 마약진통제는 사람을 죽이는 흉물이 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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