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 실행 시점, 연설일보다 앞서
곳곳에 붉은 글씨… 수정 흔적
“최씨 연설문 수정” 신빙성 높아져
청와대 비공개 문건에도 손댄 듯
최순실(60)씨가 사용하던 컴퓨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파일이 대거 저장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비선실세’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당초 최씨의 최측근인 고영태(40)씨가 “최씨가 유일하게 잘하는 게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공개됐을 당시,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가 어떻게 밖으로 회자되는지 개탄스럽다”고 일축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파일들이 최씨 측에 전달된 시점은 대통령의 실제 연설 날짜보다 이르다는 점에서 고씨 발언의 신빙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의 누군가가 최씨 측에 대통령 연설문 등을 무단 유출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24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최씨의 사무실에 있던 컴퓨터에는 모두 200여개의 파일이 저장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은 청와대와 관련된 내용이 담긴 문서 파일이었으며, 이 가운데 44개는 박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유세문이나 취임 후 연설문이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최씨가 이들 문서를 받아서 실행시킨 시점이 모두 박 대통령의 실제 발언보다 앞서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 내에서도 대통령 연설문은 극히 일부에게만 공유되는 보안 자료로 통한다. 최씨가 대체 누구를 통해, 어떤 경위로 이를 입수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드레스덴 연설문’이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이 독일을 국빈방문해 드레스덴에서 ‘통일대박론’의 구체적인 실천방안과 대북관계 로드맵을 내놓아 화제가 됐던 연설문인데, 해당 연설이 시작된 시점은 2014년 3월 28일 오후 6시40분쯤(한국시간)이었다. 하지만 최씨가 파일 형태로 전달된 이 원고를 열어본 것은 하루 전인 3월 27일 오후 7시20분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최씨가 미리 받아본 원고 곳곳에는 붉은 글씨도 있었다고 JTBC는 보도했다. 이 부분은 박 대통령이 실제로 읽은 연설문에서 일부 내용이 달라졌다고 한다. 때문에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 초고를 미리 받아본 뒤 ‘수정본’을 전달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연설문 외에 비공개 청와대 문건도 최씨가 받아보고 수정한 흔적이 드러났다. 2013년 8월 5일 오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민정수석 등이 교체된 비서진 개편을 발표하기 전날인 8월 4일 오후 6시27분 해당 내용이 담긴 ‘국무회의 말씀자료’ 문건이 수정됐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 다시 보는 '정윤회 파문' 결정적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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