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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찬아! 자철이 형한테 밥 사달라고 해”

입력
2016.10.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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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가 정해성(58) 대한축구협회 전 심판위원장의 축구칼럼 ‘유로기행’을 비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정 위원장은 국가대표 코치와 프로 감독을 역임한 베테랑 지도자로 최근 축구협회 심판위원장에서 물러나 현재 유럽에서 축구 연수 중입니다. 1탄은 정 위원장이 직접 만난 황희찬(20ㆍ잘츠부르크) 이야기입니다.

황희찬(왼쪽)과 정해성 전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 정해성 제공
황희찬(왼쪽)과 정해성 전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 정해성 제공

황희찬이 어제(23일) 오스트리아 프로축구 장폴텐 원정에서 정규리그 1ㆍ2호 골을 한꺼번에 터뜨리며 5-1 승리를 이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며칠 전에 희찬이를 만나 몇 가지 조언을 해줬는데 바로 이렇게 골을 넣으니 내심 흐뭇했다.

지난 주 금요일(21일) 독일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 잘츠부르크와 니스(프랑스)의 유로파리그 조별리그를 지켜봤다. 황희찬은 후반 37분 투입됐다. 7~8번 볼 터치를 했는데 부지런히 움직이며 짧은 시간이나마 존재감을 나타내려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음 날 희찬이와 희찬이 어머니와 식사를 함께했다.

희찬이를 처음 본 건 2005년쯤이었다. 전남 강진에서 열린 고교대회로 기억한다. 주변에서 ‘대단한 선수가 나왔다’고 칭찬이 자자해 궁금하던 차였다. 소문대로 기량과 체격 조건 모두 훌륭했다. 그런데 정작 뛰어야 할 때 안 뛰고 약간 어슬렁대는 듯 했다. 이번에 밥을 먹으며 ‘솔직히 그 때 실망스러웠다’고 하니 희찬이는 ‘부상을 당해 통증을 참고 뛴 거였다’고 털어놨다.

희찬이는 “저를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한국 지도자가 자신을 찾아온 건 신태용(46) 국가대표 코치 이후 내가 두 번째라고 했다. ‘조언에 목말랐구나’ 싶어 마음이 짠했다.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하는지 느껴졌다.

“쉬는 날 주로 뭐하느냐”고 묻자 희찬이는 ‘그런 걸 왜 묻지’하는 표정이었다. “쉬는 날 독일로 가서 구자철(27) 등 대표팀 형을 만나서 밥 사달라고 하라”고 말했다. 그 때까지도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눈치였다. 이유가 있다. 처음에 유럽에 진출하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지만 막상 부딪히면 높은 벽을 실감한다. 벤치만 지키면 자신감도 없어진다. 한국처럼 마음을 터놓을 친구도 없다. 유럽에 갈 정도면 늘 ‘신동’ 소리만 들으며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아 좌절감도 훨씬 크다. 이영표(39), 박지성(35), 기성용(27ㆍ스완지시티), 구자철 모두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선배들의 조언이 중요하다. 막연한 조언이 아니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살아 있는 충고를 해줄 수 있다. (구)자철이도 독일에 처음 진출해 한참 힘들 때 비행기를 타고 영국까지 가서 (박)지성이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하물며 오스트리아에서 아우크스부르크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 반이면 가는 거리다. 그제야 희찬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희찬이는 진중했다. 내 말 하나라도 놓칠 새라 눈을 반짝였다. 여기서 살아남아 더 높은 무대로 가겠다는 강한 열망이 느껴졌다. 팀 훈련을 직접 보고 구단 사장과 대화해보니 잘츠부크르가 희찬이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 같은 자세면 조만간 더 ‘큰 물’에서 활약하는 희찬이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희찬아! 힘들 때면 자철이 형한테 가서 꼭 밥 사달라고 해라. 형들이 후배 밥 사줄 돈은 충분하단다.”

<잘츠부르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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