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예언을 한다는 게 말도 안 되지만, 진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2년 전 JT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밀회’ 얘기다.
드라마 ‘밀회’에 정유라(진보라 분) 라는, 요즘 화제의 중심에 있는 그녀와 이름이 똑 같은 인물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현실에서의 정유라와 똑같이 밀회 속의 정유라도 예체능계열 전공으로 대학에 부정입학 했다. 더구나 드라마 속 정유라의 엄마가 ‘투자전문가’로 위장한 무속인이라는 건 네티즌들이 술렁이는 포인트. 이게 끝이 아니다. ‘밀회’ 3회를 다시 돌려본 네티즌들은 극중에서 조교가 음대 입학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의 출석을 체크하면서 정유라 뒤로 ‘최태민’이라는 이름을 부른다는 것까지 찾아냈다. 소오름! (▶ 관련기사)
이쯤 되면 밀회는 드라마가 아니라 예언서였던 말인가, 하고 의심해보게 된다.
2년 후의 키워드 ‘개, 돼지’가 미리 등장?
‘밀회’ 4회를 보면, 비리를 일삼는 ‘금수저’ 김인주 교수가 가난한 첼로전공 학생의 레슨을 하다가 신경질을 내는 장면이 나온다. 싸구려 악기 때문에 귀를 버릴 지경이라고 화를 내면서 독일말로 뭐라고 퍼붓고 레슨실을 나간다.(가만, 독일? @.@)
독일어 능력자들의 전언에 의하면, 이때 교수가 내뱉은 욕설이 ‘돼지’ 등의 단어라고 한다. ‘밀회’의 후반부에서는 이런 ‘개 돼지’들의 반란이 나온다. 싸구려 악기로 구박을 당한 학생을 포함한 ‘흙수저 5인방’이 합주를 준비한다. 물론 이선재(유아인)도 여기에 들어가 있다.
이들은 학교 복도에서 무료로 합주를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교수들의 비리를 까발리는 대자보를 붙인다. 강준형 교수(박혁권)가 화가 나서 대자보를 찢어버리는 장면(사진), 기억나시는지. 그리고 2016년으로 돌아와서, 요즘 화제가 된 모 대학의 그 대자보가 오버랩이 되는 건…
정유라와 엄마는 다치지 않는다?
‘밀회’ 속의 정유라, 그리고 그의 엄마는 어떤 결말을 맞을까.
15회에서 이들은 한성숙 이사장(심혜진)의 지시에 따라 허겁지겁 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사건의 내막을 모르는 정유라(진보라)는 갑자기 외국으로 가는 게 싫다면서 비행기 프레스티지석에서 선재(유아인)에게 ‘오혜원 정말 무서운 여자다’라고 분노의 문자를 날린다.
하지만 진실은 한성숙이 오혜원(김희애) 등 다른 이들을 내버린 채 백 선생(길해연)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장 먼저 ‘빨리 해외로 나가라’고 귀띔한 것. 마지막에 오혜원, 한성숙 등 주요 인물들이 비리 혐의로 법정에 설 때도 백 선생 모녀는 모든 표적에서 벗어나 숨어있다.
샤머니즘을 비웃는 드라마
8회. 시종 무겁고 진지하기만 한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시트콤 같은 장면이 하나 등장한다. 강준형 교수(박혁권)가 아내의 불륜이 의심스러워서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를 찾아간다. 차마 사실 대로 묻지도 못 하고 ‘선재라는 아이를 아내와 함께 잘 키워 보려고 한다’며 아내와 선재의 사주를 넣는다.
이 역술인은 “이선재라는 아이는 교수님에게 귀인 중의 상 귀인”이라면서 “또 아내는 남자보다도 일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바람피는 일이 절대 없다”고 못을 박는다. 박혁권의 난감한 표정이 압권.
배운 것 많고 돈도 많다는 부류가 단골 점집이나 찾아 가다니. 이런 걸 비꼬는 장면이다. 아니, 어쩌면 요즘 호사가들이 ‘밀회’가 예언을 했다며 호들갑 떠는 걸 미리 비웃은 장면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그 정유라는, 보도에 의하면 2015년에 정유연에서 정유라로 개명했다. 밀회가 방영되던 2014년에는 고등학생이었고, 이름도 정유연이었다. 제작진이 ‘정유라와 모친’ 스토리를 알고 썼을 리 없다는 증거다.
다만, 밀회의 작가와 감독이 대학과 권력층, 그리고 이름만 번듯한 ‘재단’ 등의 각종 숨은 스토리에 대해 치밀하게 취재를 하고 실제로 어디선가 일어날 법한 스토리와 인물 설정을 만든 것인데, 그게 기가 막히게 지금 현실과 맞아떨어진 것이다.
덧붙이는 이야기. ‘밀회’라는 2년 전 드라마를 다시 돌아보다가 생생하게 다시 떠오른 건 뜻밖에도 세월호 사건이었다. 밀회는 2014년 3월 17일부터 5월 13일까지 방영됐다.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10회까지 방영된 후, 그 바로 다음 날이던 4월 16일에 세월호 침몰 사고가 생겼다. 그리고 11, 12회는 세월호 특보로 인해 한 주 결방한 후 그 다음주부터 다시 이어졌다.
스무 살 어린 남자아이와 불륜을 저지르는 여자의 이야기가 비현실적인가, 배 안에 갇혀 있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어떤 것도 해주지 못한 채 가라앉게 만든 사건이 비현실적인가 하는 머릿속의 질문들. 그 이후 세월호 관련 뉴스를 보고 울다가 이어서 밀회를 이어봤던 기억이 다시 떠올라 버렸다. 뉴스가 더 픽션 같았던, 드라마가 오히려 더 현실 같았던, 지독히도 헷갈렸던 당시의 기억들이다.
2년이 지나서 이 드라마는 비슷한 걸 또 묻는다. 20세 연하남과의 불륜 스토리가 비현실적인가,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이어져 나오는 최순실-정유라 관련 의혹들이 비현실적인가.
마더티렉스 (프리랜서 작가)
[TV 좀 봅시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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