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 역할 고민하는 토론회서
권력보다 직무에 초점 둘 것 강조
“검사는 법의 명령 받아 쓰는 연필
스스로 연필 쓴다 생각하면 안돼”
“누군가를 법에 복종시킬 때 왜 그(현재 권력의 실세)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가? 살아있는 권력을 검찰이 수사하지 않는다면 검사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고검장 출신 서영제(66ㆍ사법연수원 6기) 변호사가 검찰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25일 대한변호사협회와 법조언론인클럽 공동 주최로 서울 종로구 인사동 신영기금회관에서 열린 ‘누구를 위한 법조인인가’토론회에서다. 기조발제를 맡은 서 변호사는 “(검찰이) 비리를 확인하고도 덮어두거나 수사에 착수하고도 면죄부를 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검사들이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며 수사를 회피한다면 스스로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인 최순실(60)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확산되는 가운데, 검찰이 “불법행위가 있다면 엄정 처벌할 것”이라는 대통령 말 한마디 뒤에야 수사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데 대한 비판도 제기되는 터라 그의 작심 발언은 법조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날 토론회는 올해 전ㆍ현직 판ㆍ검사와 전관 변호사의 잇따른 법조비리로 인해 법조계가 심각한 진통을 겪게 되자 국민 신뢰 회복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서 변호사의 이런 비판은 살아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해 재판에 넘겨야 땅에 떨어진 검찰의 신뢰를 수습할 수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그는 이날 과거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일화도 소개했다. 한 국가기관장이 회식에서 “대통령을 위해 충성을 다하자”고 건배사를 선창했지만 자신은 안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대통령에게 충성할 게 아니라 법에 따라 검사 직무에 충실하면 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 변호사는 또 공정한 수사를 위해 수사와 인권옹호라는 검찰 본연의 업무가 아닌 외부 접촉은 자제할 것을 제언했다. 그는 이어 “검사는 법의 명령을 받아쓰는 연필이 돼야지 스스로 연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검사들의 특권의식을 비판하기도 했다. 서 변호사는 참여정부 출범 뒤 서울중앙지검장을 맡아 대우건설 정치권 로비사건과 굿모닝시티 사기분양사건 등을 처리했으며 대구고검장을 끝으로 2005년 검찰을 떠났다.
이어 발제자로 나선 박민표 대검찰청 강력부장은 “최근 고위직 검사를 비롯한 비리 혐의가 적발되는 등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은 악화일로인 상황”이라며 “검찰을 비롯한 법조직역이 변하지 않으면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내부 청렴성뿐만 아니라 사건처리 절차 등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이 필요하고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해소해야 한다”며 “국민들이 직접 수사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임선지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부장판사는 법관의 신뢰 회복을 위해 비위법관 재판업무 배제와 변호사법 정비 등을 제시했다. 임 판사는 “법관 윤리나 사법에 대한 신뢰 확보는 제도 문제이기도 하지만 개인 문제이기도 하다”며 “법조인 개개인이 대책에 대해 공감하고 내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조인 신뢰도 설문조사 결과도 이날 발표됐다. 지난 10월 10~24일 612명이 참여한 설문에 따르면 검사에 대한 신뢰도는 5점 만점에 2.3점으로 법조직역 중 최하위였다. 판사에 대한 신뢰도가 2.8점, 변호사가 2.6점이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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