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가 사라지자 한숨이 깊어졌다. 금강산 육로 관광마저 중단되자 조금이나마 머금었던 미소마저 잃게 됐다.”
주민 마모(59)씨는 고성군의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둘러보려면 꼭 들려야 했던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7번 국도변에 즐비하게 늘어섰던 식당과 건어물 가게는 잡초만 무성한 채 흉물로 변한 지 오래”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금강산 육로관광의 관문이었던 강원 고성군. 대한민국 국토의 동쪽 최북단에 자리한 이곳은 13년 전인 2003년 2월 14일 금강산 육로관광이 시작될 때만 해도 ‘남북교류의 1번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주민들은 민족의 명산을 찾는 인파가 사라진 명태를 대신해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확신했다. 관광객이 2005년 6월 100만 명을 넘어서더니 2008년 상반기에는 누적 관광객이 200만 명에 육박했다. 주민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뤄지는 듯 했다.
그러나 2008년 7월 11일 관광객 총격 피살 사건이 일어나면서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8년간 음식점을 비롯한 자영업소 414 곳이 도산했다. 일자리가 줄어 돈을 벌기 위해 자녀를 남겨두고 인근 도시로 떠나는 1970년대나 봄직한 일들마저 일어났다. 악재가 꼬리를 물며 고성군 인구는 3만 명 수준에 턱걸이 하고 있다. 인구 유출이 지속되고 유입은 없으니 장기적으로 공동체 소멸 단계에 진입했다는 통계 전망도 나온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월 평균 32억 원에 달한다는 게 고성군의 하소연이다.
그럼에도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금강산 육로관광 재개는 불투명하다.
올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남북관계의 ‘최후의 보루’로 꼽던 개성공단마저 문을 닫으면서 금강산 관광 재개 역시 기대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관광 사업에 수반되는 대가 송금이 북한으로의 대량 현금(벌크 캐시) 전달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를 위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금강산 관광은 더욱 요원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피해는 고성뿐만 아니라 설악권 전반에 미치는 것은 물론 강원 경제 전체에도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더 이상 앉아서 남북관계 개선이나 정부대책 만을 기다릴 수 없게 된 것이다. 급기야 지난 7월 11일 군 번영회원을 비롯한 고성군민 400여 명은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상경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금강산관광중단 피해지역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비롯해 ▦피해에 상응하는 특별교부세 지원 ▦남북교류 촉진지역 지정 ▦통일전망대 권역 관광 지정 기반 조성 지원 ▦통일시대를 대비한 동해고속도로 고성구간 연장 등을 요구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절규이자 생계투쟁이었다.
주민들은 지난 22일 고성군을 방문한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도 절실함을 쏟아냈다.
송흥복(70) 고성군 주민자치위원장은 “화진포 문화재보호구역 해제와 수상레저 상시 금지구역 완화, 군사시설보호구역 완화 등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각종 규제를 풀어달라”고 촉구했다. 함홍열(59) 이장연합회장은 “금강산 관광 중단에 따른 특별교부세가 지원될 수 있도록 부탁 드린다”고 간곡히 말했다.
이에 대해 홍 장관은 “접경지 규제 완화를 위해 국방부와 행자부, 국회와 협의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남북협력기금과 철도연결 문제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고성이 안보관광지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관계 부처와 규제 완화 등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한 이양수(속초ㆍ고성ㆍ양양) 의원은 “통일부가 금강산 관광을 대체할 산업을 육성토록 산자부 등 경제부처 장관들과 공유하고 협의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홍 장관은 이날 고성 주민들을 만나 “명태양식 성공을 축하 드린다”고 덕담을 건넸다. 자취를 감췄던 명태가 돌아와 어민 소득이 늘어나고 관광지마다 인파로 넘쳐나는 고성의 봄날은 언제 올까.
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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