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사과 통해 국정 개입 인정
“崔, 어려움 겪을 때 도와준 인연”
인사ㆍ외교 간여 의혹엔 해명 없어
국기 문란 논란… 레임덕 가속화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최순실(60ㆍ최서원으로 개명)씨의 정권 비선실세 논란과 관련, “대통령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씨의)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고치고 청와대 자료를 받는 등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박 대통령이 직접 시인한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최씨가 청와대를 등에 업고 미르ㆍK스포츠 재단에 개입했고, 정부의 인사ㆍ외교 정책에도 간여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해명하지 않았으며, 국정 쇄신 요구에도 화답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게 하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것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깊이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최씨와의 깊숙한 관계를 인정하는 대국민사과를 통해 ‘최순실 게이트’를 돌파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최씨가 청와대 자료들을 받아 저장한 PC 증거까지 공개된 상황에서 더는 논란을 차단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ㆍ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 최씨가 국정에 간여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박 대통령은 급속한 레임덕(임기말 권력 누수)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최씨의 의견을 듣는 것을) 그만 두었다”고 설명했다. 또 최씨의 국정 개입에 대해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 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이었다”고 해명했다. 2013년 2월 정권 출범 이후에도 최씨의 국정 개입이 한 동안 계속됐으며, 그것도 박 대통령의 ‘허락’ 하에 이루어졌다는 얘기다. 이는 박 대통령과, 최씨에 대한 자료 전달을 담당한 참모들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등을 위반하고 국기문란을 저질렀다는 논란을 키웠다. 최씨의 PC에는 2014년 중순까지 청와대 자료를 받아본 기록이 남아 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라고 소개했다. 최씨는 고(故) 최태민 목사의 딸로, 박정희 전 대통령ㆍ육영수 여사가 서거해 박 대통령이 18년 간 은둔한 시절 곁을 지킨 ‘말벗’이었다. 박 대통령은 “최씨는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 운동이 국민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며 “일부 (선거 유세) 연설문이나 선거 홍보물도 표현 등에 대해 도움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가 그간 알려진 것보다 돈독하며 최씨가 박 대통령 주변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청와대는 그간 “최씨는 수십 년 전의 지인일 뿐, 박 대통령의 측근이 아니다”고 부인해 왔다.
박 대통령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 25일 언론인터뷰에서 “최씨가 각계 전문가들과 비선 모임을 꾸려 국정 전반을 논의했다”고 주장하는 등 정권을 흔드는 ‘최순실 악재는’ 커지고 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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