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최순실씨와의 관계를 일부 인정하는 대국민사과에 나서면서 과거 두 사람의 관계를 둘러싼 여러 증언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사실 확인이 어려운 다소 허황된 내용이어서 당시엔 일방적인 주장으로 치부됐지만 최근 의혹을 입증하는 근거가 속속 등장해 “복선은 있었다”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고 최태민 목사와 그의 다섯째 딸 최씨, 그리고 박 대통령의 관계는 1990년 박 대통령의 동생들인 박근령ㆍ박지만씨의 편지로 일부 세상에 알려졌다. 둘은 수신인을 노태우 당시 대통령으로 한 일종의 탄원서를 A4용지 12장 분량으로 썼고 “저희 언니와 저희들을 최태민 목사의 손아귀에서 건져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박근령씨가 자필로 쓴 탄원서에는 최 목사의 비리와 재산 축적 내용을 고발하는 내용과 함께 “이번 기회에 언니가 구출되지 못하면 언니와 저희들은 영원히 최 목사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장난에 희생되고 말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최 목사는 그로부터 4년 뒤 세상을 떠났다. 당시 최 목사가 유언으로 최씨에게 “박근혜를 잘 모시라”고 당부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후 최 목사 일가와 박 대통령을 둘러싼 이야기는 묻히는 듯 했으나, 17년 뒤인 2007년 6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17대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다시 세상에 나왔다. 당시 박근혜 후보의 경선 상대였던 이명박 후보 캠프의 장광근 대변인은 육영재단, 영남대, 정수장학회 등을 검증한 내용을 밝히며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최씨 일가에 의한 국정농단의 개연성은 없겠는가”라고 공격했다.
비슷한 주장은 박 대통령 집권 2년 차인 2014년 일명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때도 나왔다. 문건 유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박관천 전 경정은 담당 검사와 수사관에게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은 최순실씨가 1위, 정윤회씨가 2위,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 재직 시절 박 전 경정의 상관이었던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9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비슷한 암시를 자락에 깔았다. 당시 그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과거) 민정비서관으로의 발탁과 윤전추 행정관의 청와대 입성도 최순실씨와의 인연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주장들은 모두 발언 당시에는 근거가 없어 큰 힘을 받지 못했다. 특히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이 “(박 대통령과 최씨가) 아는 사이는 분명하지만 절친하게 지낸 것은 아니다”고 국정감사장에서 발언하면서 허위 의혹제기가 될 뻔했다. 하지만 이날 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최씨로부터 대선 때는 물론이고 취임 이후에도 조언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함에 따라, 해당 주장들 모두 의혹 규명 차원에서 정밀 재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서상현 기자 lssh@hankookilbo.com
● 다시 보는 '정윤회 파문' 결정적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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