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준 前장관 “진상 얼버무려”
이원종 前수석 “향후 리더십 우려”
최순실(60ㆍ최서원으로 개명)씨의 국정 개입 의혹에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대국민사과를 했지만 정치원로와 정치평론가들은 “타는 짚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최순실 게이트’를 ‘국가 기강이 붕괴된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박근혜정부가 임기 1년 4개월을 앞두고 레임덕 상황을 맞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이날 본보 통화에서 박 대통령의 사과를 두고 “국가의 근본이 무너진 사건인데, 무엇이 잘못인지 진상은 또 뭔지 설명도 없이 얼버무리고 사과를 했다”며 “국민들이 사과라고 느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순실씨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아주 제한적으로만, 그것도 마지못해 인정하는 태도로는 대통령 하야까지 거론하는 민심을 잠재우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은 앞서 박 대통령이 이날 오후 사과 기자회견을 갖기 전 “사과와 함께 청와대 참모진의 전면 개편, 거국내각 구성 등 대오각성의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향후 국정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대통령이 어느 정도 사안으로 생각하고 이 정도의 사과를 했는지 모르겠다”며 “사과를 안 한 것보다는 나을지는 모르겠다”고 허탈해했다.
원로들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 리더십의 부재 사태까지 우려했다. 윤 전 장관은 “왕조 때도 없었던 일로 박 대통령이 평소 가장 강조했던 국가의 기강이 허물어진 사건”이라며 “사실상 이 정권은 붕괴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전 수석도 “향후 대통령의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국민들도 상당한 혼란을 각오해야 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사과에서조차 최씨를 감싸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진우 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은 페이스북에 “그렇다면 (대통령) 자신이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고 최순실은 아무런 죄가 없다는 이야기이냐”고 꼬집었다. 이 소장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이라는 불법 행위에도 순수한 게 있고 순수하지 않은 게 있다는 말인지 모르겠다”며 “범죄행위를 하기는 했지만 그 후에 그만뒀으니 그냥 넘어가달라는 이야기로 들린다”고 비판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박 대통령의 사과도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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