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치료의 기본은 마음 속 깊은 곳의 정서들에 접근해 그것을 표현하는 데 있습니다. 환자들이 자유롭게 그림 그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 자체가 좋은 치료법이 될 수 있는 이유죠.”
‘리빙뮤지엄’은 정신질환자들이 자유롭게 미술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일종의 작업실 겸 전시공간이다. 30여 년 전 미국 뉴욕에서 처음 개관해 네덜란드, 스위스에 잇따라 문을 열었고 지금까지 수천 명 환자들이 임상적 회복을 보였다. 아시아 최초로 11월 3일 경기 기흥구 용인정신병원에 개관하는 ‘리빙뮤지엄 코리아’의 디렉터를 맡은 김성수 정신과 전문의는 26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의사들이 해왔던 일을 스스로 해낸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치료방법”이라고 소개했다.
“약물 치료나 강제 입원을 동반하는 기존 치료법은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의사 역시 환자를 평가하고 분석하는 역할에 어느 정도 얽매여 있는 게 사실인 데다, 정신병은 ‘겪어본 사람이 가장 잘 아는’ 병인 만큼 의사의 탁월한 상담능력도 피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김성수 전문의는 리빙뮤지엄이 현재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치료법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유롭게 그림 그리는 과정에서 의사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본질적인 응어리에 “순식간에” 접근할 수 있고, 무엇보다 정신질환을 앓았거나 혹은 앓고 있는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가 디렉터로 맡은 역할은 지도나 교육이 아니다. 그들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두는 것’이 그의 임무다. “강요는 없다”는 게 원칙이다. 환자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지 정하고 구성원 간 갈등도 알아서 해결한다. “작품도, 환경도 무질서하고 어지럽게 보일 수 있지만 어떤 제한도 둬서는 안 된다”는 게 리빙뮤지엄의 운영 방식이다.
환자의 정체성 회복에도 좋다. “증상이나 치료과정도 힘들지만, 사회에서 ‘비정상인’으로 낙인 찍혀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많은 환자들이 고통스러워 한다”며 김 전문의는 “‘예술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함으로써 환자들은 일상적인 삶을 되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완화에도 기여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리빙뮤지엄은 정신의학계뿐만 아니라 미술계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생산된 미술작품 중 다수가 제도권 교육과 장르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아웃사이더 아트’의 걸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김성수 전문의는 전했다. “정신질환은 그 자체로 큰 고통이지만 동시에 무의식의 영역에 존재했던 비범한 직관과 창조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며 그는 덧붙였다. “일찍이 리빙뮤지엄이 설립됐던 뉴욕에서는 이미 아웃사이더 아트 시장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몇몇 작가들 작품은 굉장히 비싼 값에 팔리면서 환자의 자립에도 도움을 주고 있고요.”
지난 8월 본격적인 설립 논의가 시작된 만큼 아직 메워야 할 부분이 많고, 성공여부를 점치기도 이르다. 그러나 지향점은 확실하다. “리빙뮤지엄은 단순히 작업공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권위적 서비스와 사회적 낙인 사이 소외돼 온 이들을 사회로 이끌어내는 문화운동인 셈이죠.”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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