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국민 투표 전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브렉시트)할 경우 영국경제와 안보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높은 우려를 나타낸 강연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브렉시트 협상을 지휘하고 있는데다 투표 당시 브리메인(영국의 EU 잔류)에 대해 소극적 입장을 보인 것과도 달라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서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25일(현지시간) 가디언은 메이 총리가 지난 5월 26일 골드만삭스 주최로 열린 비공개 강연에 참석해 발언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단독 보도했다. 강연에서 메이 총리는 “5억 인구의 무역 블록(EU)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영국에 투자를 하는 이유는 영국이 유럽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가 유럽에 있지 않다면, 영국 보다는 유럽 본토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생각하는 회사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연 시점은 국민투표 한 달 전으로, EU에 잔류해야 한다고 분명히 밝힌 것이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내무장관으로서 브렉시트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잔류파 유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 비판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중도적 입지를 내세워 잔류 및 탈퇴 진영 모두를 아우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총리직에 올랐다.
이와 함께 메이 총리는 안보상의 문제를 들어 EU 잔류 필요성도 제기했다. 그는 “EU의 회원국으로 있는 것이 명백하게 영국을 보다 안전하게 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수년간 영국은 유럽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존재로 인식했고, 우리는 언제나 뒷자석에 앉아왔다”며 영국이 유럽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밝혔다. 강연 참석자들에게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고 투표하길 바란다”며 사실상 ‘잔류’를 선택할 것을 독려했다.
메이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이 뒤늦게 알려지자 논란이 쏟아졌다. 팀 패런 자유민주당 대표는 “대중에게 (브렉시트에 대해) 경고할 정치적 용기는 내지 못하고, 은행가들에게 사적으로 브렉시트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연설했다는 점이 실망스럽다”며 “더 실망스러운 것은 그가 이전에 했던 경고들을 무시하고 영국을 단일 시장에서 빼냄으로써 영국 경제에 기념비적 자해를 가하려고 하는 점”이라며 맹비난했다. 잔류 진영이었던 필 윌슨 노동당 의원은 “우리가 오랜 시간 말해왔던 것에 대해 메이 총리도 개인적으로 공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젠 총리로서 그가 이전에 했던 걱정들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총리실 대변인은 “영국은 EU를 떠나기로 분명한 결정을 했다”며 “정부는 자연스럽고 순조롭게 빠져 나가길 원한다. 이것이 영국과 EU 모두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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