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가 정해성(58) 대한축구협회 전 심판위원장의 축구칼럼 ‘유로기행’을 비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정 위원장은 국가대표 코치와 프로 감독을 역임한 베테랑 지도자로 최근 축구협회 심판위원장에서 물러나 현재 유럽에서 축구 연수 중입니다. 2탄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구자철(29ㆍ아우크스부르크) 이야기입니다.
구자철을 처음 본 건 10년 전 이맘때인 2006년 늦가을이었다. 당시 제주 감독이었던 나는 고교축구대회 ‘백록기’ 결승을 보러 갔다가 보인고 3학년 구자철을 발견했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선수라는 직감이 들었다. 대학을 가려던 그를 설득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선발했다. 구자철은 역시 훌륭하게 성장했다. 그는 2013년 6월 결혼하며 나에게 주례를 부탁했다. ‘훌륭한 어르신들 많다’며 손사래 쳤지만 내심 뿌듯했다. 결국 내 인생 첫 주례를 섰으니 우리의 인연도 보통은 넘는 것 같다. 하하.
요즘 국가대표팀이 워낙 시끄러워서 구자철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일부러 묻지 않았다. 대신 내가 대표팀 수석코치를 맡아 허정무(61ㆍ프로축구연맹 부총재) 감독을 모셨던 2010년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이야기를 해줬다. 그 때도 월드컵 진출까지 고비가 많았다. 허 감독과 나도 사직서를 늘 가슴에 품고 다니는 심정이었다. 최종예선을 통과해 본선에서 첫 원정 16강을 달성하기까지 가장 고마운 건 지금은 은퇴한 이운재(43), 안정환(40), 김남일(39) 등 ‘노장’들이었다. 그들은 까마득한 후배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도 싫은 내색을 안 했다.
이들은 팀 기강을 바로 세우는 ‘규율반장’ 역할도 톡톡히 했다. 규율반장이란 게 무조건 후배들을 잡으란 뜻이 아니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대표팀 막내들은 선배 앞에서 제대로 숨도 못 쉬었다. 당연히 팀 경기력에는 마이너스였다. 자기에게 패스 안 한다고 눈을 부라리는 선배 앞에서 후배가 맘 편히 기량을 펼칠 수 있겠는가. 시간이 흘러 이런 문화는 싹 사라졌다. 하지만 최소한의 기강은 필요하다. 유럽 어느 리그에서 활약하든 대표팀에 오면 23명 중 1명일뿐이다. 남아공월드컵 당시 최고 선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박지성(35)이었지만 그는 대표팀에서 스타 의식을 드러낸 적이 없다. 박지성이 겸손하기도 했지만 김남일이나 안정환 같은 고참들이 분위기를 잘 만들어준 덕이다. 지금 대표팀 사정은 잘 알 수 없지만 밖에서 봤을 때 응집력이 부족한 게 느껴진다.
대표팀은 일단 소집하면 아주 짧은 시간(보통 2~3일) 훈련하고 경기에 나선다.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때 우리 선수들은 밥을 먹든 차를 마시든 주로 경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코칭스태프가 시키지 않아도 삼삼오오 전술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고 토론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중국에 가면 얼마를 번다’ ‘중동 가면 벼락부자 된다’ 같은 화제가 주류라고 한다.
구자철이나 기성용(29ㆍ스완지시티) 같은 선수들이 후배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줘야 한다. 구자철이 “저도 노력한다고 하는데 잘 안 된다”고 어렵게 털어놓는 걸 보니 고민이 많긴 많은 모양이다. ‘네가 대표팀 막내일 때 희생했던 선배들을 생각하며 포기하지 말고 후배들을 챙겨라’고 다시 한 번 당부했다.
독일에서 며칠 동안 아우크스부르크 팀 훈련을 보며 깜짝 놀란 점이 있다. 구자철이 팀의 ‘실세’였다. 팀 내 독일 선수는 물론 다른 유럽 선수들도 구자철에 의지하고 있었다. 주장은 따로 있지만 감독도 구자철을 ‘기둥’으로 예우했다. 유럽에서 주전으로 살아남기도 힘든데 동료들이 이렇게 따를 정도라니 기특했다. 자철아! 이젠 대표팀에서도 네가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할 때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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