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60ㆍ최서원으로 개명)씨가 국정에 개입하고 기업들에게 자금을 받아 재단을 운영했다는 의혹이 점차 사실로 드러나면서 국민의 분노가 치솟고 있다.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각종 여론조사 지지율이 20% 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주말에는 시민 사회단체와 대학생, 정의당 등이 주도하는 대규모 장외 집회에 많은 시민들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일개 사인(私人)이 대통령의 의상부터 정책 결정까지 모든 부분에 개입하여 사실상 좌지우지했다는 의혹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정권 말 측근 비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때문에 대통령이 권위를 이미 상실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전대미문의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탄핵’이나 ‘하야’라는 단어가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국민의 분노는 크다. 그러나 야당과 사회 원로 등은 내각 총사퇴 후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내년 1년여 동안 대통령은 외치(外治)만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네티즌 의견도 갈리기는 마찬가지다. 탄핵이냐, 하야냐, 거국내각이냐, 각자 논리도 그럴 듯하다. 과연 무엇이 국가와 미래를 위해 가장 바람직할지, 다양한 의견을 읽고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정리해 봤다.
1안-내각 총사퇴 후 거국내각 구성하자
여론조사 결과나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보면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매우 강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 국민의당 등 주요 야당은 직접적으로 대통령 퇴진을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특검을 실시하고 우병우 민정수석을 비롯한 책임자들과 내각 총사퇴 후 거국 내각을 구성하자는 구상이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29일 열리는 촛불집회에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장외에는 안 나간다”는 것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을 제외한 문재인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 대권주자들 역시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대통령은 보호돼야 하고 헌정 중단이 돼선 안 된다”면서 “대통령이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이 신중한 행보를 보이는 직접적인 이유는 탄핵을 발의한다고 해도 통과 가능성이 낮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재적의원의 3분의 2 찬성표를 받아야 통과되는데 현재 새누리당 의석 수를 보아 현실적으로 통과되기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다수다. 만약 발의한 후 통과되지 않으면 오히려 역풍이 불 수 있고, 야권 대선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퇴진 후 대선이 이어질 경우 정국을 예상하기도 쉽지 않다.
설사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라는 관문이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기각 결정을 예로 들며 “단순히 대통령 기록물 유출을 넘어 ‘중대한 국가기밀 누설’에 대통령이 관여한 점이 명백해야 탄핵의 요건인 ‘중대성’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면서 당사자들이 모두 부인해 증거를 확보하기 매우 어려울 것으로 추측했다. 홍 교수는 “특검법을 통과시키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해서 증거를 확보한 이후에야 탄핵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안-탄핵 또는 하야가 답이다
정치권에서는 신중론이 우세하지만 시민들은 들끓고 있다. 국민으로서 참을 수 없는 수치심과 상실감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와 탄핵에 대한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에 대한 호응 등은 이를 반영한다. 탄핵이나 하야를 주장하는 이들은 야당의 소극적 대응에 대해 국민의 분노를 담지 못하는 ‘정치공학적’ 계산의 결과라고 비판한다. 특히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은 탄핵보다는 국민의 힘을 보여줌으로써 대통령이 직접 퇴진하도록 하는 하야를 더 강조하는 모습이다.
정치권에선 드물게 강경 입장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 27일 JTBC ‘썰전’과의 전화통화에서 “하야 또는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지금 박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이 아니다”라면서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국가 통치 권한을 근본도 알 수 없는 최순실에게 맡겼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정치공학이 아니라 국민을 믿고 대통령의 권한을 박탈해야 한다”면서 “국가의 운명이 걸린 일인데 너무 계산할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정의당도 하야를 주장하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27일 당 차원에서 “대통령 하야 촉구 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고, 종로 보신각에서 집회도 개최했다.
인터넷 논객 중에도 야당의 신중함이 국민의 분노와 힘을 오히려 사그라뜨릴 수 있다며 하야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2014년, 현 정권을 “비선조직이 다 결정하고 대통령은 옷을 잘 차려 입고 해외 순방만 다니면 되는 ‘바지 정권’”이라고 규정하고 “정권 말기가 되면 비선조직이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를 것”이라고 예견(바로보기)했던 딴지일보의 ‘물뚝심송’(@murutukus) 역시 대통령의 자진 하야를 주장했다. 그는 “(야당) 대선주자급들이 손익계산이 복잡해서 하야, 탄핵 주장을 못하는 거야 현실적으로 이해해 줄 수 있지만 정치인도 아닌 유권자들이 나서서 하야, 탄핵 얘길 못하게 하고 그 얘기를 하는 다른 정치인을 비난하는 행태는 바보짓”이라면서 국민이 탄핵이나 하야를 원한다면 자유롭게 말하게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의견-탄핵이라니! 대통령이 불쌍하다
물론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아직까지 17%의 국민은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이들은 사태의 책임이 박 대통령 본인이 아닌 최순실에게만 있다고 본다. 오히려 최순실에게 이용 당한 불쌍한 대통령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고 있다. 당연히 탄핵이나 하야는 고사하고 거국내각 구성조차 말도 안 되며, 최순실만 단죄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김주하 MBN 앵커는 27일 ‘뉴스8’을 진행하며 박 대통령에 대해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며 “(최순실씨와)40년 간 우정을 지켜 온” 대통령을 감쌌다. 그러면서 “최순실은 권력을 남용해 버렸다”며 책임을 최순실에게 돌렸다.
2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 박정희 전 대통령 37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엄마부대봉사단 회원들도 “회견문 잠깐 볼 수도 있는 거고, 박 대통령은 잘못한 게 없다”며 “최순실씨는 처벌 받아야 한다”고 했다. 새누리당 친박계 정우택, 김진태 의원도 종종 동정론을 제기하고 있으나 여론의 역풍을 맞아 현재는 조용한 상태다.
최진주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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