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수석 잘 뽑으라고 했는데…
靑에 직언하는 참모들 없고
고언 받아들일 것 같지도 않아”
“다시 사죄하고 정공법 수습을”
“그렇게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을 당하면 얼마나 허탈한지 알아요?”
전화기 너머 깊은 한숨과 탄식이 들리더니 한참 뒤 돌아온 말이다. 김용갑(80) 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의원이 28일 본보 통화에서 밝힌 소회는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 보수의 심정을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2007년 당 대선 후보 경선 때 3선 의원으로서, 2012년 대선 때는 당 상임고문으로서 박근혜 대통령을 도운 대표적인 ‘원로 친박’이다. 의원 시절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소신을 밝히기로 유명해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도 있다.
“원칙ㆍ신뢰 중시해 도왔는데…” 탄식
“내가 ‘원조 친박’인데 박 대통령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 말이야….(한숨)” 김 전 의원이 받은 충격은 상당히 큰 듯했다. “박 대통령이 늘 원칙과 신뢰를 강조했기 때문에 그거 하나 믿고 도왔는데 이렇게 됐다”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전 의원은 이미 지난달 청와대의 한 수석에게 최순실씨 의혹을 알아보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최씨의 이름과 함께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 비리가 보도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이런 의혹이 임기 말에 나오는 게 아무래도 간단치 않아 보인다. 빨리 사실 관계를 알아보고 대통령께 보고 드려라”는 취지였다. 김 전 의원은 “그런데 내 말이 먹히지 않았던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전두환 정권 때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그는 2012년 대선 직후 박 당선인에게 ‘민정수석만은 제대로 인선하라’고 강조한 일도 돌이켰다.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사정당국을 관리하는) 민정수석은 검찰 출신이 아닌, 대통령에게 목숨 걸고 직언 할 수 있는 명민한 사람을 쓰시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당시 대통령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결과적으로 수용되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 최씨뿐 아니라 기업과의 수상한 부동산 거래 논란 등 여러 의혹을 받는 우병우 민정수석 때문에도 곤욕을 치르고 있다.
김 전 의원이 대통령에게 ‘쓴소리’ 할 기회는 그것이 끝이었다. “그 뒤론 (대통령과) 단절됐다”며 “나뿐 아니라 우리(지난 대선 때 원로자문그룹 7인회)와는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게 서운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정권을 재창출한 걸로 내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나도 (마음을) 정리한 거죠. 그저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대통령이 지지 속에 직을 잘 수행하기를 바랐는데 이렇게 되니 속이 아파 죽겠어요.”
전두환에 “국가 살려야” 직선제 수용 직언
그는 청와대 참모들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도 질타했다. “지금 자기 개인을 생각할 때냐”는 거다. 그러면서 이런 일화를 들려줬다. 전두환 정권이 몰락의 길에 접어들던 87년 6월이었다. 그 해 1월 ‘박종철 고문 치사 조작사건’부터 ‘4ㆍ13 호헌조치’, ‘이한열 열사 사망사건’으로 시민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6ㆍ10항쟁으로 이어졌다. 당시 민정수석 김용갑은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한 뒤 이렇게 말했다. “남은 임기 8개월 동안 이 사태를 수습하고 정상적으로 정권 이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국민과 야당의 요구 중 하나인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자는 의미였다. 대통령은 말이 없었다. 김 전 의원이 한 마디를 더했다. “야당 하면 어떻습니까. 국가부터 살리고 봐야지요.”
김 전 의원은 “지금 청와대 참모 중에 그런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아니냐”며 “이제 보니 직언을 한다고 해도 대통령이 받아들일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허탈해했다. 그는 “사태가 지속되면 국가가 위중해진다”며 “대통령이 다시 사죄하고 필요하면 처벌을 달게 받겠다는 정공법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경남 밀양ㆍ창녕(현재는 밀양ㆍ의령ㆍ함안ㆍ창녕)에서 15~17대 의원을 지냈다. 2008년 총선에서 “지난 총선 출마 때 한 약속을 지키겠다”며 당내에서 가장 먼저 불출마 선언을 했다. 당시 그가 남긴 말은 “박수칠 때 떠나려고 한다”였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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