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십 년 후 자식들에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싶어 거리로 나왔습니다.”
기타를 맨 강재현(19)군의 당찬 외침에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10도 남짓의 추운 날씨에도 29일 오후 서울 인사동 북쪽 광장은 ‘최순실 게이트’로 시끄러운 나라를 걱정하기 위해 모인 청소년들로 북적거렸다.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 청소년행동'여명',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 청소년 단체회원 30여명은 이날 ‘박근혜가 망친 민주주의, 청소년이 살리자’는 기자회견을 열고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로 일컬어지는 최순실씨를 규탄하려 거리로 나선 것이다.
이들의 정부 비판 집회는 기성세대와 달랐다. 머리띠를 두르고 결연한 표정으로 구호를 외치는 대신 다양한 공연을 선보였다. 시국선언을 하기 앞서 최씨와 박 대통령의 얼굴 가면을 쓴 학생들이 앞으로 나섰다. 이어 줄에 매달린 대통령이 사과문을 발표하도록 조종하는 장면을 연출해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풍자했다. 흥겨운 랩과 노래도 곁들여졌다.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를 한 강군은 “어른들이 하는 집회는 지나치게 딱딱해 청소년들이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며 “우리도 한국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 집회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은 선언문에서 “교육을 통해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배워 왔다. 우리가 배운 내용에 비선실세에 좌우되는 대통령은 없었다”고 일침을 놨다. 중학생 박지수(15)양은 “청소년에게도 행동하고 참여할 권리가 있다”며 “미래 세대의 주인으로서 우리는 더 이상 박근혜와 최순실이 대한민국을 망치는 것을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코 앞에 둔 한 수험생은 “민주정치가 망가지는 꼴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공부를 뒤로 하고 왔다. 우리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대표를 다시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1시간 가량 집회를 마친 후 청계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합류하기 위해 저마다 직접 쓴 현수막과 피켓을 손에 들고 정부서울청사까지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글ㆍ사진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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