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로 주목된 최순실씨의 관계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고 혼란에 빠뜨렸다. 대통령이 정치 경제 등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분야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최씨와 정론을 상의하고 의지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더군다나 최씨가 박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워 정부의 주요 인사와 정치인, 기업인 등을 주무르며 최고의 권력을 누렸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면서 국민들은 공분을 넘어 허탈감에 사로잡혀 있는 실정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이질 않는다”는 국민들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올 법도 하다. ‘하야’나 ‘탄핵’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인기 검색어가 되고 자발적 시민 집회가 열리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무능한 정부, 부정부패의 정권, 정경유착 등을 주제로 한 한국영화들이 박 대통령과 최씨의 일을 미리 예견한 것 같아 뜨끔하다.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성토에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무섭고도 치밀하게 연결된 정부와 검∙경찰, 기업 등의 횡포를 담은 영화들을 들여다봤다.
부당거래(2010) – 경찰 수뇌부의 가짜 범인 만들기
부정부패, 비리가 혼재된 검사와 경찰을 꼬집는 영화다. 류승완 감독은 비리 검사 주양(류승범)과 부패한 경찰 최기철(황정민) 그리고 조직폭력배 출신 기업 회장 장석구(유해진) 등 세 사람을 등장시킨다. 영화는 세 사람이 모종의 거래를 통해 서로 이익을 추구하려는 실체를 드러내는 데 힘을 준다. 이들은 살인, 폭력 등 악랄한 행위들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관객을 뜨악하게 만드는 대목은 따로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사건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는 경찰이 범인을 조작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심지어 대통령까지 사건의 수습을 언급하자 간담이 서늘해진 경찰이 내놓은 해결책이다. 돈이나 든든한 ‘빽’이 없어 승진에서 번번이 물을 먹은 철기에게 승진을 미끼로 가짜 범인을 만들어 사건을 종결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떨어진다. 철기는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후배들을 모아 특별 수사대를 만든다. 후배 경찰들은 경찰 수뇌부와 철기의 음모를 모른 채 범인 검거에 나선다. 철기는 장석구를 시켜 가짜 범인을 만들고 체포하기에 이른다.
영화는 이러한 전 과정을 ‘막장 드라마’처럼 스크린에 펼쳐 놓는다. 결국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비관적인 결말에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소수의견(2015) – 정부의 왜곡된 진실 감추기
강제철거 현장에서 16세 아들을 잃은 철거민 박재호(이경영)는 경찰을 죽인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경찰은 재호의 아들을 죽인 건 철거용역이라고 주장하지만, 재호는 경찰이 아들을 죽였다며 정당방위를 내세워 무죄를 외친다. 그러나 재호의 말을 들어주는 이는 없다. 이때 재호를 변호하기 위해 지방대 출신으로 2년 경력의 국선변호사 윤진원(윤계상)이 나선다. 경찰 작전 중에 벌어진 일이니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살인사건이라는 것이다. 진원은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고 직감하고는 이혼전문 변호사인 선배 대석(유해진)을 끌어들인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장면은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하려는 정부와 검찰이다.
검찰은 그날의 경찰 기록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사건 배정을 받은 판사까지 주무르며 판세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 한다. 진원이 확보한 증인마저 손을 쓴다.
이 모든 건 정부가 철거용역까지 동원해 철거민들을 폭행하는 등 온갖 부당한 방법으로 그들을 내쫓으려는 내막을 숨기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끔찍한 건 아무리 용을 써봐도 정부와 그 아래 권력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마지막에 부패한 검사 재덕(김의성)이 쏟아내는 대사가 섬뜩하다. “누군가는 국가를 위해 봉사를 하고 누군가는 국가를 위해서 희생을 한다. 그 사람(재호)은 국가를 위해서 희생한 거고 난 국가를 위해서 봉사를 한 거다.”
내부자들(2015) – 재벌 기업가가 주무르는 정부와 언론
여기 한국 사회를 손에 쥐고 쥐락펴락 하는 세 명의 인물이 있다. 재벌그룹의 오 회장(김홍파)와 유력한 대통령 후보 장필우(이경영), 그리고 유명 신문사의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이다. 이 가운데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은 이강희의 충성스런 개가 되어 온갖 나쁜 짓을 일삼는다. 그러다 더 큰 성공을 꿈꾼 안상구는 이들의 비자금 파일을 준비하다 발각돼 폐인으로 전락해 조용히 살아간다.
그러나 복수를 준비하던 상구는 ‘족보 없는’ 검사로 연명 중인 우장훈(조승우) 검사를 만나 일말의 희망을 품는다. 이들 다섯 사람의 두뇌 싸움이 흥미진진하게 스크린을 휘감는다. 그러나 관객이 마주한 영화 속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부장검사가 민정수석에 얼굴을 조아리고, 민정수석은 차기 대통령 후보에게 미래를 부탁하며 굽실거린다. 한 정치인은 재벌에게 줄을 대어 달라며 언론인을 찾아가고, 그 대통령 후보는 돈 많은 재벌에 붙어 비위를 맞추는 데 여념이 없다. 이 굴레를 벗어날 틈은 없어 보인다. 수년간 아니 수십 년간 이어졌을 먹이사슬에 기가 찰 따름이다.
결국 우 검사가 자리를 그만둬야 하는 결단 속에 이들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지만 거기까지다. 관련자들이 법의 처벌을 받을지언정 사회에 만연한 비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수라(2016) – 악덕 시장에 무너지는 무능한 수사기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영화에서 가상의 도시 안남시의 시장 박성배(황정민)는 악의 축이다. 조직폭력배와 결탁하고 돈으로 검찰과 경찰을 매수한다. 그러나 그의 악행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없다. 굳이 영화에서 다루진 않았지만 정부도 그에게 손을 뻗칠 수 없다는 분위기를 풍긴다. ‘아수라’는 박성배의 세상에 토를 다는 인간들이 모두 갈기갈기 찢기는 자극적인 영상을 보여준다. 아픈 아내 때문에 수술비 등 돈이 필요한 비리 경찰 한도경(정우성)은 박성배의 뒷일을 처리하며 대가를 받는다. 그러다 일이 틀어져 자신의 경찰 동료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고에 휘말린다. 이래저래 세상에 앙심을 품게 되는 도경은 박 시장의 부정부패를 밝히려는 검사 김차인(곽도원)에 의해 협박을 당한다. 박 시장의 비리와 범죄 혐의를 밝혀내라는 것이다. 김 검사와 박 시장 사이에서 고민하는 도경은 세상에 더욱 치를 떨며 “세상도 사람도 싫다”고 말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악인 박 시장은 무수한 영화에서 봐왔던 악마의 대표격이다. 사람을 납치해 살인을 교사하고, 이익을 위해 조직폭력배와 손을 잡고 사건을 조작한다. 검찰까지 좌지우지하며 법의 포위망도 교묘하게 빠져 나간다. 검사나 형사를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다. 도대체 그 어떤 절대 권력을 가졌기에 가능한 것일까. 영화는 박 시장이 어떻게 그만한 부와 권력을 얻었는지 자세하게 설명하진 않는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충분히 아프고 쓰리고 괴롭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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