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라인 공백… “부처가 알아서 해라”
교체 1순위 경제부총리 令도 안 서
실물경기 냉각 등 악재 겹쳐 한숨만
#1. 정부는 지난달 31일 내놓은 조선업 경쟁력 강화방안에 정상(대통령)의 해외 순방 기회를 활용해 선박 해외수주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정부 관료들 내에서조차 한탄 섞인 푸념이 나왔다. 한 경제부처 관료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세일즈 외교를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니겠느냐”고 했다.
#2. 지금 청와대는 정책 컨트롤타워가 사라진 상태다. 비서실장(이원종)과 선임 수석비서관(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이 모두 물러나면서, 두 사람이 번갈아 주재하던 일일 회의는 약식으로 열리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이 직책도 없는 민간인에게 조종당했다는 의혹을 받는 전대미문의 사건은 정치를 넘어 경제정책과 실물경제에도 엄청나게 부정적 여파를 일으키고 있다. 세계경제 격변기의 격렬한 풍랑에 맞서 국내외에 산재한 크고 작은 암초를 겨우겨우 피해가던 한국경제호(號)는, 선장이 키를 놓치고 지휘통제 체계가 허물어지며, 급기야 배에 물이 새고 난파당할 처지에 몰려 있다.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경제 분야에 미친 가장 심각한 영향은 정책의 리더십 공백이다. 청와대 안에서 지금 경제에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이는 사실상 없다. 한 경제부처 정책 관련 업무 담당자는 “최근에는 현 정부 경제정책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더라”며 “일선 부처가 다 알아서 하라는 식”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통령 권위가 땅에 떨어진 마당에 가뜩이나 컨트롤타워 기능을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경제부총리나 장관의 말발이 먹히기도 어렵다. 한 부처 관계자는 “거국내각이 구성되면 경제팀 장관들도 교체 대상에 오르지 않겠느냐”며 “경제팀 정책동력은 이미 크게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총력 대응을 해도 버거울 판에 국정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가뜩이나 위태로운 경제는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모습이다. 1일 발표된 10월 수출액은 1년 전보다 3.2% 감소하며 9월에 이어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의 20% 이상을 책임지는 국가대표급 기업,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부진이 결정적이었다. 9월엔 수출 부진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던 소비가 4.5%나 급감하면서 생산ㆍ소비ㆍ투자 등 3대 지표가 일제히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연말 1,300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 가계부채, 좀처럼 멈추지 않고 치솟는 부동산 과열 등의 시한폭탄도 째깍대고 있다.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통상환경 변화, 12월로 예상되는 미국 금리 인상 등 적기 대처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 후유증이 엄청날 대외 리스크도 산적해 있다.
전문가들은 안보와 더불어 민생과 직결된 경제만큼은 ‘최순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빈기범 명지대 교수는 “지금 경제팀은 대통령 의중에 따라 일했던 사람들인데 지금 뭘 할 수 있겠느냐”며 “기존에 경험이 있던 명망 있는 이들을 중용해서 남은 1년 경제정책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헌 서울대 객원교수는 “경제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타이밍을 놓치면 또다시 대우조선해양과 같은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제 리더십의 조속한 회복을 주문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세종=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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