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등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들이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이권에도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씨가 소유한 더블루K가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힘을 빌려 지난 3월부터 개ㆍ폐막식장 공사 금액을 부풀려 따내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당시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주먹구구식 사업 예산 등에 제동을 걸자 조직위원장을 교체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2일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등에 따르면 스위스 스포츠 시설 전문 건설회사인 누슬리는 지난해 8월 개ㆍ폐막식장 건설 수주를 위한 입찰을 준비하다가 조직위가 제시한 공사비 980억원이 적다는 이유로 입찰을 포기했다. 결국 두 차례나 유찰되면서 입찰 업체가 나서지 않자 조직위는 대림건설과 수의 계약했다.
하지만 더블루K는 올 1월 12일 설립 직후 누슬리와 업무 제휴를 맺은 뒤 함께 개ㆍ폐막식장 공사 수주를 다시 시도했다. 실제 3월 8일에는 서울에서 더블루K와 누슬리 관계자들이 만나는 자리에 안종범 전 대통령 정책조정 수석 비서관과 김종 당시 문체부 제2차관도 참석해 올림픽 시설 공사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후 개ㆍ폐막식장 공사와 관련된 문체부의 압력이 시작됐다. 문체부는 박 대통령의 회의 발언이라며 누슬리를 검토해보라는 의견을 조직위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다. 조직위 전 관계자는 “김종덕 당시 문체부 장관이 개ㆍ폐막식장 공사를 누슬리가 할 수 있게 하라고 계속 요구했다”며 “조직위가 누슬리의 시공 방법이 이미 확정된 개ㆍ폐막식장 시설안과 콘셉트가 맞지 않는다고 계속 반대해 결국 누슬리와의 계약이 무산됐다”고 말했다.
당시 조 위원장은 “아무도 안 한다고 해서 어렵게 대림건설에 맡겼는데 이제 와서 계약을 다시 할 수는 없다”며 문체부 의견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위원장은 이 밖에도 수십억원대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 용역비 5억원, 컨설팅비 3억원 등 주먹구구식으로 결재가 올라오자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조직위 예산의 사소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체크했던 조 위원장이 이해할 수 없는 사업에 대해 제동을 건 것이다.
조 위원장이 지난 5월 갑자기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것도 이런 상황과 관련돼 권력 고위층의 외압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조직위 전 관계자는 “지난 5월 2일 조 위원장이 김종덕 문체부 장관의 연락을 받고 나간 자리에서 조직위원장 사퇴를 종용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조 위원장은 이튿날인 3일 ‘한진해운 경영정상화에 주력하겠다’는 이유로 사퇴를 발표했다. 문체부는 조 위원장의 사퇴 발표 직후 기다렸다는 듯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을 후임 조직위원장으로 내정했다. 이에 대해 한진그룹은 “당시 평창조직위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만 밝혔다.
최순실의 측근인 차은택이 연루된 광고영상 제작업체 머큐리 포스트가 꾸린 빛샘전자컨소시엄이 석연치 않은 심사 과정을 거쳐 평창동계올림픽 빙상장 LED 프로젝트 업체로 선정돼 한국콘텐츠진흥원의 45억원짜리 기술개발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컨소시엄은 올해 사업 중간평가에서 ‘특별히 새로울 것 없는 기술’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평창올림픽 빙상장 LED 프로젝트에서 원래 이 사업을 제안한 업체를 제치고 지원업체로 선정됐다.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개명 전 장유진)도 자신이 설립을 주도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이용해 평창올림픽 관련 이권 사업을 벌였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지난해 6월 출범한 영재센터는 2년간 문체부로부터 6억7,000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았고, 빙상캠프와 스키캠프를 열며 삼성과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로부터 각각 5억원과 2억원의 지원금을 받아 챙겼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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