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이 고른 기묘한 사진 한장
1977년 박前대통령 부녀 함께한
저도 휴가사진 추억 소환하게 해
공감ㆍ연민 자극 시각적 코드로
빈농출신 민중영웅 이미지 설계해
국민적 희생ㆍ유대감 강조한
선친의 기술 물려받았을 수도
유산 탕진한 현재 지지율 5%대
저도의 추억 주인공은
독재자가 아닌 상처입은 시민들
어쩌면 몇 년 전의 이 사진 한 장이 지금의 대혼란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것은 2013년 7월 30일 박근혜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자신의 첫 여름휴가 사진이다. 사진이 찍힌 경남 거제시 저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별장인 청해대가 있던 곳이다. 당시 청와대는 경호상의 문제를 우려하며 휴가지를 기사화하지 말라고 출입기자들에게 부탁했지만, 정작 페이스북에 휴가 사진을 직접 올리며 장소를 노출한 이는 박 대통령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런 혼란에 대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 최순실씨의 태블릿PC에서 이 사진을 비롯한 휴가 사진들과 그것을 고른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외부에 배포되는 대통령의 사진마저도 청와대의 공식적인 홍보 루트가 아니라 한 민간인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은 강력한 정치적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국가건 권위주의 체제건 왕정이건 간에 홍보 사진을 찍어서 유통시키지 않는 현대 국가란 없다. 대통령의 사진은 통치 행위의 일부다. 사진은 대중을 향해 발신하는 정치적 메시지이자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하는 미디어이며, 통치자들은 대개 어떤 이상적인 지도자의 이미지를 사진으로 보여주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휴가 사진에서 책을 읽거나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신의 지적 역량과 통치력을 과시하는 흔한 시각적 코드다.
어딘지 기묘한 대통령 휴가 사진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 만들고 선택한 이 사진은 기묘하다. 인적 없는 바닷가에 ‘저도의 추억’이라는 글씨를 나뭇가지로 쓰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은 이상적인 지도자는커녕 낡고 뻔한 신파극의 한 장면을 잘라서 동결시킨 것처럼 보였다. 네티즌들은 포토샵으로 ‘저도의 추억’이라는 글씨를 지우고 ‘국정원 댓글 내가 시켰다’와 같은 글씨를 합성해 넣는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이 이상한 사진은 합성과 복제를 거듭하며 박 대통령의 사진들 중 가장 선연한 기억을 우리에게 남겼다.
그렇다면 정작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 이 사진을 통해 얻어내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지적 능력이나 소탈함과 같이 민주주의 사회의 지도자가 지녀야 한다고 간주되는 미덕을 대중에게 어필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 단서는 11월 4일 금요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성명에서 드러났다. 그들은 언제나 연민의 힘을 믿으며, 위기에 처하면 연민 속으로 도피한다. 즉 이 사진에서 그들이 만들어내려 했던 이미지는 대의민주제 국가의 대통령이 아니라 차라리 부왕을 잃은 비운의 왕녀에 가깝다. 2013년의 박 대통령은 선친에게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인 대중의 감정적 공감과 연민을 자극하려 했던 듯하다.
물론 이것은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통치자가 취할 태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태도는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이 사진은 우리 사회의 어떤 이들이 실제로 지니고 있는 ‘저도의 추억’을 소환하는 강력한 주문과도 같다. 즉 누군가는 이 사진을 보면서 수십 년 전 저도에서 찍힌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휴가 사진을 떠올리며 처연한 기분에 잠길 것이다. 사진 속의 박정희는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망중한을 즐기는 소탈한 가부장처럼 보인다. 헤엄치고, 그림을 그리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이미지 설계한 첫 권력자 박정희
박정희는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설정하고 그것을 대중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드러낼 것인지에 대해 체계적인 전략과 실행 체계를 만들었던 한국 최초의 권력자였다. 박정희 정권의 문화공보부는 유례없이 방대하고 강력한 조직이었고, 그 목적은 입체적인 정권 선전과 교육을 통해 정권에 순응하고 봉사하는 ‘국민’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문공부는 체계적인 글과 사진을 생산했고, 그것을 전국적으로 유통시킬 수 있는 경로를 구축했다. 공보부가 만든 자료들과 잡지 ‘새마을’은 각 마을의 새마을회관이나 새마을문고를 통해 유통되었다.
주목할 점은 박정희가 언제나 자신이 빈농의 아들임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는 양녕대군의 방계 자손인 이승만 ‘박사’나 명재상 윤두수의 후손이자 장안의 세도가 출신이었던 윤보선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었다. 박정희는 양반이나 지주, 왕이나 귀족의 타고난 권위에 기대는 대신, 가난한 집안에서 출생하여 엄청난 의지력과 근면성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오른 소탈한 민중 영웅의 이미지를 선택했다. ‘밀짚모자’와 ‘선글라스’를 번갈아 쓰고 나타나는 그는 빈농 출신의 민중 영웅이자, 강력한 가부장적 군인 아버지였다.
박정희가 사진을 사용하는 방식은 강력했다. 분명 박정희는 항거하는 이들을 탄압하고 살해하는 독재자였지만, ‘가난’에 고통 받는 국민과 강렬한 동질감과 유대감으로 결합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보자. 박정희가 바지를 걷고 농사일을 하는 사진을 찍었던 최초의 대통령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도가의 자손인 윤보선이나 통정대부의 아들 함태영이 하는 모내기 사진을 보면서 별다른 감정을 느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었다. 그것은 귀족들의 장난에 불과하다.
하지만 박정희가 밀짚모자를 쓰고 논일을 하는 사진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모질게 파고든다. 가난하고 늙은 어머니가 키울 자신이 없어서 낳지 않으려 간장 사발을 들이키다 얻은 막내아들이었다. 학비를 대기 어려웠던 농투성이 어머니는 똑똑한 자식이 대구사범학교 시험에서 낙방하기를 부뚜막에서 빌고 또 빌었다. 당시 이런 종류의 고통과 슬픔은 흔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겪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아픈 것은 아니었다.
정치적인 위기에 처할 때면 해외 순방을 떠나거나 정상회담을 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행동은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기술일지 모른다. 키 작고 얼굴 까무잡잡한 빈농의 아들이 해외 정상들과 나란히 서서 연설하는 사진을 보는 순간, 국민이 겪는 고통은 비로소 의미를 얻곤 했다. 즉 박정희 정권의 프로파간다 이미지는 지금 국민이 견디는 고통이 조국과 민족의 영광을 위한 도정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국민들은 자신과 같은 빈농의 아들이 영웅이 되어 역사를 만들어가는 현장을 목격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런 믿음은 국민들이 겪는 고통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면죄부를 발급한다.
‘추억’의 주인공은 상처 입은 시민
이것은 사실 마조히스트의 전형적인 사고 구조이기도 하다. 이런 사진들이 나쁜 것은 보는 이들을 일종의 자기연민의 상태에 밀어 넣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빌헬름 라이히는 마조히스트가 고통을 찾는 이유는 고통 그 자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통해서 좀 더 강렬한 감각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가난과 부조리라는 고통을 견뎌냄으로써 빈민의 아들인 영웅과 함께 민족 중흥의 역사에 동참하는 강렬한 감각을 얻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이들이 대개 고통을 견디는 것을 거부하는 사회 구성원을 미워하고 증오하게 된다는 점이다. 누군가 이 사회의 구조가 사실은 부조리하고 불평등하다는 것을 알려준다면, 과연 그들은 그 말을 귀담아 들을 수 있을까? 그들은 아마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자신의 희생과 시간이 모욕당했다고 믿을 것이다. 이런 믿음과 분노야말로 박정희의 강력한 정치적 자산이자, 박 대통령이 물려 받은 유산이다. 그런 믿음이 모욕당했을 때, 박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절대 참지 않아 왔다.
지금 우리는 그 유산이 대부분 탕진된 것처럼 보이는 시대를 맞이했다. 대통령 박근혜의 지지율은 5%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것은 여전히 수백만 명이 박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뜻이기도하다. 뿐만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 국면이 온다면 과거의 기억은 다시 폭발적으로 결집할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네트워크를 타고 몰려오는 수많은 ‘저도의 추억’ 사진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수백만 명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이 지나온 시대에 대해 존중을 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박정희의 기억이 부정 당한다고 해서, 당신들의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사실 그 시대의 주인공은 독재자 개인이 아니라 상처 입고 다치며 일했던 수많은 이들의 것이라고 우리는 말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한 시대의 거대한 프로파간다를 마무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김현호 사진비평가ㆍVOSTOK매거진 편집동인
공동기획: 한국일보ㆍ인문학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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