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여, 사이비 종교계의 황태자 단군 미륵이라 추앙받던 최태민 태자마마의 다섯번째 부인 임씨 부인의 다섯째 딸, 여장부 최순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사기꾼 기질과 영험함으로 국정을 농단하여 조선을 복속 시키고 그 나라의 이름을 헬조선으로 개명하고 순실여왕이 되었구나!”
최순실 국정농단을 풍자한 각종 패러디물, 노래가 쏟아지는 가운데 ‘히뜨작’이 탄생했다. 소리꾼 최용석(42)씨가 만든 5분짜리 시사판소리 ‘순실가’. 음악평론가 서정민갑씨가 지난 4일 ‘음악인 시국선언’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musiciandeclaration)에 동영상을 올리며 일반에 알려진 작품은 이틀 만에 유튜브 조회수 1만을 가볍게 넘으며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최용석씨는 7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박근혜정부 들어와서 시사판소리 작창을 관뒀다가 5년 만에 다시 만든 시사판소리가 순실가”라며 “시사판소리는 시국에 맞춰 급하게 만든 작품이라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술가로 하고 싶은 선택은 아니지만, 소리꾼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딱 5년 전 MB정권을 동물 왕국에 빗대 조롱한 ‘쥐왕의 몰락기’로 전국 순회공연을 했던 저력의 소리꾼.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통해 작품이 알려지며 유명세도 꽤 탔다. “2008년 11월 광우병 파동 때 광화문 나갔다가 물대포를 맞은 적 있어요. 직접 맞은 건 아니고 튀는 물을 맞은 건데 너무 억울하더라고요. 그렇게 처음 만든 시사판소리가 ‘쥐왕…’이었죠.” 하루 만에 뚝딱 만든 10분짜리 시사판소리는 3년 개작을 거쳐 1시간 반짜리 ‘대작’이 됐다.
한동안 시사판소리를 그만두었던 최씨가 ‘순실가’를 만들 게 된 건 지난 달 국악방송의 ‘신창렬 최용석의 백스테이지입니다’ DJ를 맡게 된 게 결정적이었다. 방송사 개편으로 국악인들이 한달 씩 돌아가며 DJ를 보는 이 프로그램에 음악평론가 서정민갑씨가 패널로 나왔고 ‘이러고 가만있을 거냐?’는 평론가의 부추김에 지난 달 28일 칼을 빼들었다. 최씨는 “지인 스튜디오를 하루 빌려 가는 길에 스마트폰 메모장에 가사를 썼고, 창은 녹음하며 다듬었다”며 “5일 공연 때 이 작품을 불렀는데 아직 가사가 입에 붙지 않아 쓴 걸 보고 불렀다”고 말했다.
중앙대 한국음악과 출신인 최씨의 본업은 판소리공장 바닥소리 대표. 소리꾼 박애리, 독립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 등 목포 출신 소리꾼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이 그룹은 2008년부터 판소리 뮤지컬을 만들어 공연하고 있다. 현재까지 활동하는 원년 멤버는 최씨와 소리꾼 현미, 고관우씨. 계층간 갈등과 소외계층 이야기를 담은 ‘잔혹판소리 햇님 달님’,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방탄 철가방’, 조류독감 걸린 닭의 닭장 탈출기를 다룬 ‘닭들의 꿈, 날다’ 등이 대표작이다.
최씨는 자신을 “ 국악인이 아니라 판소리하는 창작자라고 소개한다”며 “시사적인 작품만 하게 되면 활동에 제약이 따르니 젊은 단원들은 거리를 두자고 말하지만 이 시대를 이야기하는 소리꾼으로 방향을 잃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억압받고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데 그럼 정치 얘기를 안 할 수 없죠.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건 없거든요. 정치적인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말도 정치적인 얘기죠.”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순실가’를 ‘쥐왕’같은 긴 공연용 판소리로 개작하라는 요청이 쇄도하지만 최씨는 고개를 꺄우뚱거렸다.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 매진할 시간 쪼개서 풍자 노래를 만드는 현실이 절대 바람직한 게 아니잖아요.”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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