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독대 등 깊숙이 개입 정황
대기업 총수들 조사 필요성
정호성 靑문서 유출 수사도 쟁점
비선실세 최순실(60ㆍ구속)씨에 이어 청와대의 핵심실세였던 안종범(57) 전 정책조정수석과 정호성(47) 전 부속비서관까지 6일 구속되면서 검찰 수사가 두 사람의 상관인 박근혜 대통령의 턱밑까지 바짝 다가섰다.
검찰의 수사 포인트는 박 대통령이 안 전 수석이나 정 전 비서관에게 미르ㆍK스포츠재단의 기금 강제모금과 청와대 문서 유출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지시했느냐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하다” “(미르ㆍK스포츠재단은) 국가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한 일” 등의 언급을 한 것으로 미뤄, 자신은 ‘강제 모금’까지는 몰랐다고 해명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재단의 설립ㆍ운영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어 과연 대통령의 입에서 “모금액을 늘리도록 하라”는 상세한 지시까지 나왔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박 대통령의 직접적 개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은 미르재단 출범 3개월 전인 지난해 7월 24일과 25일,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등 국내 대기업 총수 7명을 따로 만나 ‘적극적 지원’을 당부한 것이다. 이에 더해 미르재단 출범 직전, 안 전 수석이 대기업과 전국경제인연합회 측에 “미르ㆍK스포츠재단 모금액을 600억원에서 800억~1,000억원으로 늘려 달라”고 요구했다는 재계의 증언도 나왔다. 원래 10대 그룹에 국한됐던 참여 범위가 50대 기업으로 확대되고, 재계순위 45위인 아모레퍼시픽도 출연 기업에 포함된 이면에는 청와대 측의 ‘지시’가 있었을 공산이 크다.
안 전 수석 측은 모금액 증액 요구는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러한 일이 벌어졌다면 안 전 수석이 독자적으로 했다기보다는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일 수 있다. 안 전 수석은 일관되게 “대통령의 업무상 지시를 따랐을 뿐이며, 최씨는 모르고 지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규명하려면 박 대통령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은 대기업 총수들을 조사할 필요도 있다. 만약 박 대통령이 ‘모금 규모’에도 관여했다면 재단의 설립ㆍ운영을 진두지휘했다고 볼 수 있다. 검찰로서는 박 대통령이 “순수한 의도에서 재단을 추진했다”고 해명한다 해도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대기업 총수들을 조사해 각각의 진술을 대조해 봐야 할 상황이 된다.
정호성 전 비서관의 공무상비밀 누설 혐의 수사에서도 박 대통령의 ‘구체적 지시’ 여부는 핵심 쟁점이다. 최씨가 불법 입수한 청와대 내부 문건에는 외교ㆍ안보ㆍ경제 등의 민감한 성격의 보고서들도 포함돼 있다. 최씨는 하남시 개발계획 보고서를 통해선 20억원의 이득을 보기도 했다.
물론, 박 대통령 지시는 ‘연설문 정도만 넘겨주라’는 것이었는데도 정 전 비서관의 개인적 판단 또는 최씨의 집요한 요구로 ‘공무상 비밀’까지 제공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서는 대통령의 지시나 묵인 없이 이 같은 행위가 수년간 지속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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