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제 관람 등 7시간 질서정연
“예전 횃불시위 떠올라 격세지감”
“몇 시간 뒤면 경찰이 제대로 헛발질한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5일 오후2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 백남기씨의 영결식을 지켜보던 회사원 임영준(32)씨는 저녁 예정된 촛불집회가 평화적으로 마무리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전날 불법 집회ㆍ시위를 우려해 경찰이 행진 금지통고를 한 것에 코웃음을 쳤다. 정권 퇴진을 바라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과격 시위를 할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이날 오후 4시부터 진행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문화제는 7시간 넘게 이어지는 동안 단 한차례의 대치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다. 문화제가 시작되자 광화문광장과 세종로 양쪽 인도를 가득 메운 5만명의 참가자는 계속 불어났다. 종로 양쪽 방향과 서울광장 주변까지 시간 단위로 수만명씩 메워졌다. 경찰이 추산한 집회 참가자 수는 4만3,000명. 그러나 경찰 관계자조차 “도심 행진에 가세한 시민들까지 감안하면 참여인원 집계는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오후 11시를 넘어 행사가 종료된 뒤에도 쓰레기봉투를 미리 챙겨 온 시민들은 서로 도와가며 뒷정리를 했다. 교보생명 빌딩 앞에서 쓰레기를 줍던 고교생 한예지(16)양은 “평화적 집회 모습을 보여야 TV로 지켜보는 국민들도 더욱 응원할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1년 전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했던 직장인 박모(29)씨는 “횃불까지 등장한 지난해 집회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라며 “지지율이 5%밖에 안 되는 박 대통령을 끌어 내리는데 굳이 폭력을 써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경찰만 머쓱해진 꼴이 됐다. 서울경찰청은 주최 측 도심 행진이 “‘주요 도로’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집시법 12조)”며 4일 불허 통고를 했다. 다행히 행진 시작 직전 법원이 금지통고에 제동을 건 덕분에 우려하던 마찰은 생기지 않았으나 경찰은 종로 2가에서 안국역 방면과 광화문 앞에 2중, 3중의 차벽을 치는 등 잔뜩 긴장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종로 3가~을지로 3가~서울광장을 거치는, 왕복 5㎞의 비교적 긴 구간을 행진하면서도 어린 의경들을 향해 “수고한다”는 덕담을 건네며 집회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 관계자는 “도로 위 시민들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행진 참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힘을 북돋웠다”며 “성숙한 시민이 주도하는 평화시위 기조가 지속되는 한 박근혜 정권은 더욱 궁지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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