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24일, 25일
창조경제 공식간담회 끝난 뒤
朴, 7개 대기업 회장 따로 독대
미르 K 모금 요구했을 가능성
기업은 정권 압박 부담 속
광복절 특사ㆍ경영권 분쟁 등
현안 ‘해결사’ 절실했던 시기
/그림 1지난해 7월2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 간담회가 끝난 뒤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7명의 그룹 총수들과 독대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 자리에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자금 출연을 요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홍인기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CJ 등 주요 기업 총수 7명과 독대를 한 사실이 검찰이 확보한 청와대 업무기록을 통해 알려지며 이 자리에서 어떤 대화가 이뤄졌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검찰이 대화 내용을 확인하겠다며 총수들을 조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재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6일 재계와 검찰 등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24일 청와대에서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참여한 기업 관계자 17명이 참석한 공식 간담회가 끝난 뒤 당일 오후와 다음날에 걸쳐 ‘안가’에서 7명의 기업 총수와 차례로 독대했다. 7명 가운데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등이 포함됐다. 또 신동빈(롯데) 김승연(한화) 조양호(한진) 회장 등도 독대를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확인되지 않고 있다.
재계 안팎에선 박 대통령이 공식 간담회와 별도로 총수들을 따로 만난 만큼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자금 출연을 직접 요청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7월은 미르재단이 출범하기 3개월 전으로 설립 작업이 구체적으로 논의되던 때였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박 대통령이 재벌 회장들에게 미르ㆍK스포츠 재단 사업 계획서를 보여주면서 ‘협조해달라’고 했고, 이후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해당 기업에 전화를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대기업 회장들의 독대 자리에서 이렇게 요청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해당 기업들은 확인해줄 수 없다거나 만남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의 모금 협조 이야기가 나왔다면 기업들이 이에 대한 반대 급부로 현안과 관련된 각종 ‘민원’들을 제기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구나 지난해 7월은 기업인의 광복절 특별사면 필요성이 폭넓게 거론되던 시기였다. 7월13일 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광복절 특별사면을 언급했고, 당시 횡령 등의 혐의로 수감중이었던 SK그룹의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집행유예 기간이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최태원 회장은 사면ㆍ복권돼 지난해 8월 경영에 복귀할 수 있었다.
횡령과 탈세 혐의로 수감중이었던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2013년 받은 신장이식수술 때문에 건강이 악화돼 구속집행정지 기간을 계속 연장하던 시기였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돼 위기를 맞고 있었다. 삼성그룹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반대해 법정 다툼까지 벌이는 진통을 겪던 때다. 때문에 박 대통령과 각 그룹 총수들이 모종의 거래를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기업들은 청와대와 안종범 수석, ‘비선실세’ 최순실씨 등의 압박에 돈을 낼 수 밖에 없었다며 자신들은 ‘강제모금의 피해자’라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권력에 협조한 뒤 각종 현안을 해결하려 했다면 기업들 역시 ‘자발적 공범’이란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미르재단 설립 당시 모금 대상에서 제외됐던 일부 기업들은 부랴부랴 기부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에 요청해 K스포츠재단 설립 당시에는 돈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중엔 당시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기업도 있었다.
그러나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쥔 정권의 요청을 거부했을 때 받게 될 불이익이 워낙 큰 만큼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적극 호응할 수 밖에 없는 것도 기업들의 현실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과 불화설에 휘말렸던 CJ그룹의 경우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손경식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그룹 인사까지 개입했다. 손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압력을 가한 정황도 공개됐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공적 권력을 특정 자금을 모으는 데 사용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사이자 시장경제 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이라며 “기업들의 기부 활동을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도 “30여년 전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 벌어진 것은 우리나라 정치와 기업 시스템이 여전히 후진적이라는 증거”라며 “역설적이지만 박 대통령이 대선 때 내걸었던 상법 개정을 추진하면 이사회의 투명성이 확보되는 등 기업 지배구조가 건강해져 외압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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