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분가 이층집 허물고 다세대주택
건물 8m 이상으로 올릴 수 없지만
대출상환계획 맞춰 7세대로 쪼개
이웃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한밤 중에 차 빼달라고 전화할 수 있는 집, 윗집 아이 뛰는 소리를 내 아이 뛰는 소리처럼 참아줄 수 있는 집.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일방향 변화만을 겪은 이 나라 국민들은 관대함의 사정거리를 설정하는 데 어느 정도 무능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만화가 아버지를 위해 방송국 PD인 딸이 지은 서울 강서구 개화동 일곱집엔 다섯 세대가 모여 산다. 아버지와 딸, 딸의 친구, 딸의 친구의 엄마, 딸의 친구의 엄마의 딸로 엮인 이들의 관계도는, 가족과 타인 외엔 관계 맺는 법을 모르는 우리에게 이웃의 의미를 일깨운다. 각자의 공간에서 독립적인 삶을 꾸려가는 일곱집 사람들은 이웃을 향해 미약한 온기를 뿜으며 서로의 삶을 응원한다.
북적였던 동네가 이젠 드라마 배경
일곱집이 위치한 개화동 골목은 1종 전용주거지역으로 분류된다. 이제는 희귀해진 단독주택 거리를 보존하려는 관청과 개발을 원하는 주민들 사이에 크고 작은 갈등이 일어나는 동안, 집과 동네, 주민들은 한 가지로 늙어갔다.
“옛날엔 세를 놔도 사람이 금방금방 들어왔는데 집이 오래되니 세도 잘 안 빠지더라고요. 요즘 사람들이 새 집 살고 싶지 헌 집 살고 싶겠어요. 그러다 보니까 동네에 애들이 없어요. 한때는 골목마다 애들이 넘쳤는데.. 요즘엔 ‘응답하라’ 같은 옛날 드라마 찍는 사람들만 왔다갔다 해요.”
만화가로 일하다가 지금은 작업을 놓고 있는 최씨도 이웃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수십 년을 살았다. 결혼하면서 마련한 마당 딸린 이층집은 자식들이 차례로 분가하고 나니 썰렁하고 짐스럽기만 했다. 집을 팔고 시골로 내려갈 결심을 한 최씨를 붙든 건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일하던 딸이다. 딸은 지금 있는 오래된 집을 허물고 다세대주택을 신축해 세입자를 들이자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이전 집이 어둡고 추운 데다가 융자도 있어서 계속 이자를 내던 상황이었어요. 딸이 보고 이건 ‘죽은 집’이라는 거예요. 듣고 보니 이 놈 말이 맞아요. 얼마를 대출하면 건축비를 감당할 수 있고 몇 세대를 임대 주면 언제까지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다는 것까지 계획을 다 짜왔더라고요. 그럼 지어보자, 이렇게 된 거죠.”
윤민환 건축가(스튜디오S.A.M)를 연결시켜준 것도 딸이다. 협소주택 천국인 일본에서 8년 여간 공부하고 일한 윤 소장은 좁은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짜는 데 일가견이 있었지만 일곱집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처음엔 투룸 5세대를 만들려고 했는데, 대출상환계획에 맞추다 보니 7세대로 늘었어요. 문제는 동네가 1종전용이라 다세대주택에 엄격하다는 거죠. 건물 높이가 8m를 넘을 수 없고 2층 이상으로 올릴 수도 없었습니다.”
윤 소장은 정육면체에 가까운 건물을 균등하게 12칸으로 나눠 퍼즐 맞추기에 돌입했다. 원룸 수요를 고려해 1호와 2호에 한 칸씩, 나머지 5세대에 두 칸씩 분배하니 계산이 맞았다. 그러나 변수가 하나 더 있었다. 자취생활을 오래 한 딸이 안전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공용계단과 공용현관이 없는 집을 원한 것. 공용현관이 없다는 것은 일곱 세대가 모두 1층에 각자의 출입문을 갖는 것을 뜻한다. 그게 가능할까? 다시 퍼즐 맞추기가 시작됐다.
그렇게 완성된 일곱집은 재미난 구조를 갖고 있다. 4호와 7호는 현관문을 열면 계단부터 나온다. 올라가면 거실에서 침실로 연결되는 실내 공간이 펼쳐진다. 일곱집 모두가 땅에 발을 디딜 수 없으니 두 세대를 계단을 이용해 2층으로 들어올린 것이다. 계단은 간단한 물건을 수납할 수 있는 여윳공간이 되기도 하고 액자나 소품을 놓으면 장식 공간이 되기도 한다.
협소주택 필수요소 다락으로 공간 보충
사무실 2개ㆍ가정집 5세대에 지인들 입주
건축가 부부도 이사 와… 든든한 이웃으로
4호와 7호가 두 칸을 수평으로 펼친 형태라면, 5호와 6호는 두 칸이 수직으로 연결돼 있다. 1층을 거실 겸 부엌, 2층을 방으로 쓴다. 건축가는 계단을 실내로 끌어 들이느라 손해 본 공간을 만회하기 위해 여기에 다락을 추가했다. “연면적 80평을 7로 나누면 한 세대에 11평 남짓 돌아갑니다. 혼자 살기엔 괜찮지만 가족이 살기엔 무리가 있죠. 다락은 바닥면적에 포함이 안되기 때문에 작은집을 지을 때는 필수적입니다.”
박공지붕을 이용한 다락이 생기면서 4호와 7호는 2층집이 되고, 5호와 6호는 3층집이 됐다. 4호와 7호에는 다락 일부를 할애해 외부 테라스도 조그맣게 만들었다. 7호에 입주한 최씨는 2층을 딸에게 내주고 자신은 다락방에 자리 잡았다. 다락의 경사면 쪽은 서재로 꾸며 만화책을 빼곡히 꽂아두고 테라스에서는 이전에 마당 있는 집에서 취미로 했던 조경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건축가는 테라스에 난간 대신 벽을 세우고 큰 창을 냈다. 이 창을 통해 멀리 계양산이 난간의 방해 없이 한 폭으로 들어온다. “여기 앉아 있으면 노을 지는 풍경이 기가 막힙니다.” 최씨가 흐뭇하게 웃었다.
이왕이면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입주하길 원한 건축주의 뜻에 따라 다른 집들도 부녀와 연관된 사람들로 알음알음 채워져 갔다. 가장 먼저 7호에 입주한 최씨 부녀의 뒤를 이어 4호의 주인이 된 건 뜻밖에도 윤민환 소장 부부다. 평소 “건축가 남편이 지은 집에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던 윤 소장의 아내 최윤미씨가 남편이 설계 중인 집을 구경 왔다가 4호 거실의 넓은 창에 담긴 살구나무를 보고 반해 이사를 결심한 것이다.
3호는 당시 외주 제작사를 열었던 딸의 사무실로, 2호는 딸과 함께 일하는 작가의 집으로, 6호는 딸의 오랜 친구가 어머니, 여동생과 합가하면서 채워졌다. 5호는 유일하게 입주자를 모집해 뽑은 세대다. 인터넷 부동산사이트에 일곱집이 올라오자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그 중 셰프로 일하는 청년이 5호의 주인으로 낙점됐다. 마지막 남은 1호는 화가인 최윤미씨가 작업실로 쓰기로 결정하면서 일곱집의 입주가 모두 마무리됐다. 올해 2월의 일이다.
입주가 끝난 뒤 일곱집 사람들은 한 집씩 돌아가며 집들이를 해 자축했다. 서로의 집을 자유롭게 오가며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얻어 가기도 했다. 관계의 구심점이던 딸이 최근 방송국에 취직이 돼 상암동으로 이사 가면서 세대 간 교류는 이전보다는 살짝 뜸해진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최씨 곁에는 든든한 이웃들이 생겼다.
한 동네에 수십 년 간 살면 앞집, 옆집과 친해져 덜 외롭지 않냐는 물음에 최씨는 “그래도 외롭죠”라고 답한다. “옆집 사람은 옆집 사람이에요. 한 집 사는 사람들하고는 다르죠. 매일 얼굴 보진 않더라도 옆집이랑 갈등이라도 생기면 한 편이 돼줄 거란 믿음 같은 게 있죠.” 윤 소장의 아내 최씨도 말을 보탰다. “각자의 삶에 충실하면서도 서로 안부를 궁금해해요. 오래 안 보이면 왜 안 보이는지 묻고, 누구 한 명이 취직했다고 하면 다 같이 기뻐하고요.”
윤 소장은 현재도 여러 세대가 함께 쓰는 집 세 채를 동시에 설계 중이다. “앞으로 이런 유형의 집들이 많이 늘어날 텐데 이런 때일수록 이웃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안면 있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일곱집 같은 경우가 좋은 전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건축 개요
지역: 서울 강서구 개화동
대지 면적: 266.00m2(80.47평)
건축 면적: 131.90m2(39.90평)
연면적: 263.80m2(79.80평)
용도: 다세대 주택
규모: 지상2층
최고 높이: 7.9m
주차 대수: 4대
세대 구성: 7세대 (원룸 2세대, 투룸 5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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