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미쉐린(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으로 한식당 ‘가온’과 ‘라연’이 선정됐다. 전 세계 100여 곳뿐인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에 올해 첫 정규 에디션이 발간되는 서울의 레스토랑이 두 곳이나 포함된 것은 파격적이라는 평가다. 국내 상륙 소식과 함께 올 한해 음식 분야 최대의 관심사였던 미쉐린 가이드는 한식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모던 한식보다는 정통에 가까운 한식당들에 높은 별점을 부여했다.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2개나
미쉐린코리아는 7일 오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을 발간하고, 미쉐린 스타 셰프 24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최고 등급인 3스타에는 광주요그룹이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식당 ‘가온’과 신라호텔 한식당 ‘라연’이 뽑혔다.
김병진 셰프의 가온은 왕의 하루 수라상에 담긴 흐름을 살린 한식 코스 요리를 선보이는 고급 한식당으로 매일 달라지는 제철 식재료 본연의 맛을 극대화한 음식을 선보여 왔다. 김성일 셰프가 이끄는 라연은 품격 있는 한식 정찬을 소개하는 국내 대표적 호텔 한식당으로 미쉐린으로부터 “전통 한식을 현대적인 조리법으로 세련되게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 두 차례 이름을 올린 바 있는 라연과 달리 가온은 해외 미식평가 리스트 첫 진출이다.
2스타 레스토랑은 이종국 셰프의 한식당 ‘곳간’, 권우중 셰프의 모던 한식 레스토랑 ‘권숙수’, 롯데호텔 프렌치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프레데릭 에리에 셰프) 등 총 3곳이 선정됐다.
모두 19곳이 꼽힌 1스타 레스토랑에는 ▦다이닝 인 스페이스(노진성 셰프) ▦라미띠에(장명식) ▦리스토란테 에오(어윤권) ▦밍글스(강민구) ▦발우공양(김지영) ▦보름쇠(김경수) ▦보트르 메종(박민재) ▦비채나(방기수) ▦스와니예(이준) ▦알라 프리마(김진혁) ▦유 유안(사이먼 우) ▦이십사절기(유현수) ▦정식당(임정식) ▦제로 콤플렉스(이충후) ▦진진(왕육성) ▦코지마(박경재) ▦큰 기와집(한영용) ▦품(노승혁) ▦하모(박경주) 등이 이름을 올렸다.
미쉐린 가이드가 평가 대상으로 삼는 전 세계 2만여 레스토랑 중 3스타를 받은 곳은 111개, 2스타는 416개, 1스타는 2,173개에 불과하다. 3스타는 ‘요리가 매우 훌륭하여 맛을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Exceptional cuisine, worth a special juorney)’에 부여되며, 2스타는 ‘요리가 훌륭하여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Excellent cuisine, worth a detour)’, 1스타는 ‘요리가 훌륭한 식당(A very good restaurant in its category)’에 주어진다. 별점은 전 세계 어느 레스토랑에서나 같은 퀄리티를 의미한다.
미쉐린이 입증한 ‘한식파워’
전체 24곳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중 절반 가까운 13곳이 한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으로, 한식파워가 두드러졌다. 전통과 모던을 아우른 다양한 스타일의 한식당이 포함됐을 뿐 아니라 불고기, 비빔밥 등 한정된 한식 메뉴에서 벗어나 게장(큰기와집)과 사찰음식(발우공양) 등 새로운 영역의 한식들도 주목 받았다. 하지만 음식 한류를 이끌어온 모던 한식보다는 정통 한식이 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뉴욕 정식당을 통해 이미 미쉐린 2스타를 받은 임정식 셰프의 모던 한식 레스토랑 정식당은 강력한 3스타 후보로 꼽혔으나 1스타를 받는 데 그쳤으며,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2016’에서 15위에 오르며 국내 최고 레스토랑으로 꼽힌 강민구 셰프의 밍글스도 1스타를 받았다. 한식 다음으로는 프렌치 레스토랑이 4곳으로 가장 많았고, 흔히 퓨전이라 부르는 ‘이노베이티브’ 레스토랑이 3곳으로 뒤를 이었다. 중식이 2곳, 이탈리안과 일식이 각각 1곳이었다.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는 ▦요리재료의 수준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 ▦요리의 개성과 창의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전체 메뉴의 통일성과 언제 방문해도 변함 없는 일관성 등 다섯 가지 원칙에 따라 실시됐다. 한국 외식업계에서 업그레이드가 가장 긴요한 분야인 서비스는 평가 대상이 아니다. 한식은 일품요리 위주라 평가에 메뉴 구성 면에서도 불리하다는 지적이 많았으나, 주최측은 “미쉐린 가이드는 오직 요리만을 평가한다”며 “단품 요리 또는 코스메뉴와 같은 요리의 형식과 구성은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 단품요리를 주로 판매하는 게장 식당 큰기와집과 한식당 하모, 중식당 진진 등이 미쉐린 1스타를 받았다.
식당의 서비스와 분위기는 포크와 스푼 모양의 픽토그램을 통해 별도 평가하는데, 3스타를 받은 가온은 3개의 픽토그램을, 라연은 4개의 픽토그램을 받았다. 2스타 레스토랑 세 곳 중에서도 피에르 가니에르가 픽토그램 4개로 가장 서비스와 분위기가 좋은 것으로 평가 받았다. 곳간과 권숙수는 픽토그램이 각각 3개와 2개였다. 가격대로 보면, 가장 싸게 미쉐린 스타를 누릴 수 있는 곳은 8,300원의 짬뽕이 빛나는 중식당 진진. 가장 비싼 곳은 스시 레스토랑 코지마로 1인당 가장 비싼 코스가 35만원이다.
평가는 한국인과 외국인으로 팀을 꾸린 평가원(인스펙터)들이 레스토랑과 호텔을 여러 차례 방문해 비밀리에 진행했으며, 대상 레스토랑은 평가원 팀 모두가 별점을 부여하는 스타세션을 통해 만장일치로 별의 수여가 결정됐다. 미쉐린 코리아 측은 “평가기준은 다른 도시와 동일하게 글로벌 원칙을 적용했으며, 한국인과 다양한 국적의 평가원을 투입해 한국 고유의 미식문화를 존중하고 반영하면서도 전 세계 평가기준의 일관성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미쉐린 가이드는 네이버와 함께 개발한 웹사이트(http://guide.michelin.co.kr)을 통해 국문과 영문으로 예약 및 지도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보수적 평가, 한식에 대한 이해 짧아” 비판도
미쉐린 가이드는 서울편 발간 사전행사로 평가원들이 선정한 가성비 좋은 레스토랑인 ‘빕 구르망’ 명단을 지난주 발표했다. 별점은 받지 못했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1인당 3만5,000원 이하의 가격에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들이다. 능라도, 봉피양, 필동면옥 같은 평양냉면집과 명동교자, 찬양집 등 칼국수집이 대거 포함됐다. 이 명단에 곰탕집 하동관, 평양냉면집 을지면옥, 우래옥 등 전통 있는 노포들이 빠지면서 1스타 레스토랑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불발했다.
국내 레스토랑 평가서 블루리본 서베이를 발간해온 김은조 편집장은 “받을 만한 식당들 중 명단에서 빠진 곳이 꽤 많아 아쉽다”며 “한국 고유의 밥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 해장국이나 곰탕, 설렁탕 같은 중요 메뉴들이 미쉐린 스타와 빕 구르망 모두에서 누락된 것 같다”고 말했다. 벽제갈비나 삼원갈비 같은 전통 있는 고깃집들도 꼭 명단에 들어갔어야 할 식당들로 꼽힌다.
김 편집장은 모던 한식보다 정통 한식을 더 높이 평가한 것에 대해서도 “미쉐린 가이드의 보수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프랑스에서 평가 별점을 매길 때도 실험적인 곳보다는 클래식한 식당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것처럼 한식도 서양인의 입맛에 보다 잘 맞는 컨템퍼러리한 모던 한식보다 우아하고 품격 있는 전통 한식에 더 높은 별점을 준 것 같다는 것이다.
미쉐린 가이드 정규 에디션으로 28번째인 서울편은 아시아 국가에서 일본(도쿄, 교토&오사카), 중국(홍콩&마카오, 상하이), 싱가포르에 이어 4번째로 발간됐다. 아시아 에디션으로는 6번째 책이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미쉐린 가이드 서울 별점 레스토랑>
(기준: 디너세트 1인분 기준)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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