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가 정해성(58) 대한축구협회 전 심판위원장의 축구칼럼 ‘유로기행’을 비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정 위원장은 국가대표 코치와 프로 감독을 역임한 베테랑 지도자로 최근 축구협회 심판위원장에서 물러나 현재 유럽에서 축구 연수 중입니다. 4탄은 올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화제를 모으고 있는 RB라이프치히 이야기입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차로 4시간 30분을 달려 작센 주에 도착했다. 장거리 이동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올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최대 돌풍의 팀 라이프치히와 마인츠의 경기(11월 6일. 라이프치히 3-1 승)를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라이프치히는 공격할 때나 수비할 때나 해당 진영에서 상대보다 늘 수적 우위를 유지했다. 최전방부터 최후방까지 90분 내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1명이라도 대열에서 이탈하면 이 조직은 깨진다.
더 놀라운 건 유소년부터 쭉 같은 훈련을 해온다는 사실이다.
라이프치히 클럽하우스 안에 마련된 유소년 아카데미를 둘러봤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각종 첨단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훈련장 라이트 위에 카메라가 있는데 훈련 도중 감독이 지적할 부분이 있으면 즉각 작동을 중단시킨다. 해당 영상은 훈련장 한 쪽에 설치된 스크린에 곧바로 상영되고 지도자와 선수가 함께 보며 공유하고 수정한다. 라이프치히 유소년 팀은 8세부터 23세까지 무려 22팀으로 구성돼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라이프치히 구단의 최대 주주는 오스트리아의 세계적인 음료 회사 레드불이다. 레드불은 2009년 5부 리그 팀 마르크란슈테트를 인수해 라이프치히로 재창단한 뒤 거액을 쏟아 부었다. 이후 라이프치히는 매년 한 계단씩 승격했고 올 시즌 드디어 1부 무대를 밟았다. 올 시즌 성적은 놀랍다. 현재 7승3무로 분데스리가의 절대 강자 바이에른 뮌헨과 승점은 같고 골득실에서 5골 뒤진 2위다. 레드불은 라이프치히 외에도 대표팀 공격수 황희찬(20)의 소속팀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와 뉴욕 레드불스(미국)를 소유하고 있다.
사실 라이프치히의 자금력에 대한 독일 내 의견은 엇갈린다. 분데스리가는 일부 예외 조항을 제외하면 개인이나 기업이 구단 지분의 49%를 초과 보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자본에 종속되는 걸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레드불도 표면적으로는 라이프치히 지분을 49%만 갖고 있지만 독일 사람들은 이면 계약 등 어떤 방법으로든 그 이상 소유하고 있을 거라 의심한다. 일부 팬들은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라이프치히와 맞붙으면 경기장 가는 걸 포기할 정도로 증오한다. 영국 가디언은 라이프치히를 두고 ‘독일에서 가장 미움 받는 팀’이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레드불의 축구 철학은 확실하다. 창단 이후 유소년 시스템 확립에 통 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대형 스타를 영입할 때도 구단 철학에 녹아들 수 있는 지를 반드시 확인한다고 한다. 한국 축구의 현실을 생각하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전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ㆍ작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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