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총리에 충분한 권한 드리겠다”
野 반발에도... 두루뭉술한 얘기 반복
장관 임면권 넘기라는 요구에
즉답 않고 “임명제청권 보장”
朴 대통령, 자승 스님과 회동
“꽃 버려야 열매 맺어” 조언 들어
청와대는 9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총리에게 넘길 권한의 범위를 명확하게 밝히라는 야당의 요구에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강력한 힘을 드리겠다”, “충분한 권한을 드리겠다”와 같은 두루뭉술한 입장만 내놓았다. 시간을 끌고 버티면서 최소한의 권한이라도 지키겠다는 것이 청와대의 전략인 듯 하다.
박 대통령은 8일 “총리에게 실질적 내각 통할 권한을 보장할 테니,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 달라”고 국회에 제안했고, 참모들은 “박 대통령이 모두 내려놓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야당은 박 대통령이 2선 후퇴 선언에 준하는 구체적 권한 이양 약속을 하지 않는 한 ‘진정성’을 믿기 어렵다며 응하지 않았다.
야당을 설득하려면 청와대가 대통령ㆍ총리 권한 분담 문제를 명확하게 정리해야 하는데도 청와대는 이날 꿈쩍하지 않았다. 배성례 청와대 홍보수석은 기자간담회에서 “헌법에 명시된 총리의 권한인 내각 통할권과 국무위원 임명제청권ㆍ해임건의권을 강력하게 행사하는 것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뜻”이라고 말했다. 또 “거국중립내각은 헌법에 없는 용어이지만, 그 권한을 총리에 드려 취지를 살리겠다”고 했다. 이는 대통령중심제에서 유명무실해진 총리의 권한을 상기시킨 수준이어서 야당 반발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청와대는 국무위원 임면권 자체를 넘기라는 요구는 사실상 거부했다. 정연국 대변인은 ‘새 총리가 장관 후보자를 추천하면 박 대통령이 모두 수용할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임명제청권을 비롯한 총리 권한을 충분히 행사하고 활용할 수 있게 보장한다는 것”이라며 즉답을 하지 않았다. 국무위원과 사정기관장 등의 임면 권한을 총리에게 넘길 경우 ‘식물 청와대’가 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만나 국정 수습책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자승 스님은 불교경전 ‘화엄경’의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수목등도화ㆍ樹木等到花 사재능결과ㆍ謝才能結果)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강수류도사ㆍ江水流到舍 강재능입해ㆍ江才能入海)”는 구절을 인용해 “정치권과 국민 모두 지혜로 삼아야 할 말씀”이라고 말했다. 자승 스님이 ‘버림의 미학’을 강조한 것을 두고 박 대통령의 2선 퇴진을 주문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조계종 관계자는 “분노하고 허탈해 하는 국민의 마음을 대변하기 위해 고른 구절”이라고 말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