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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 갇힌 암울한 청춘의 보고서

입력
2016.11.1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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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후보에 오른 ‘여름을 지나가다’의 조해진 작가. 문예중앙 제공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에 오른 ‘여름을 지나가다’의 조해진 작가. 문예중앙 제공

조해진의 소설 ‘여름을 지나가다’는 가망 없는 폐허 안에 갇혀버린 암울한 청춘의 보고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일상의 무게를 힘겹게 짊어진 고단한 청춘의 표정이 여기 있다. 그 표정 속에서 조해진은 지금 이곳의 삶이 맞닥뜨린 암담한 고통과 불안의 기미를 예민하고 섬세하게 포착한다.

세 인물의 사연이 교차한다. 한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결혼식을 앞둔 연인과 결별 후 회계사를 그만두고 공인중개사 보조원으로 일하며 이 집 저 집을 떠도는 민, 아버지의 빚에 짓눌려 남의 신분을 도용해 알바를 전전하는 수, 폐장이 얼마 남지 않은 쇼핑센터 옥상 놀이공원에서 곧 잃게 될 일자리를 붙들고 악착같이 일하는 연주. 이들의 삶이란 어떤 희망도 가능하지 않은, 그래서 절망할 기력조차 상실한 그런 삶이다. 그저 벗어날 수 없는 폐허 속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견디며 떠돌고 있을 뿐.

영원히 반복되는 오늘을 두렵게 견디는 것.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이다. 와중에 이들은 그래도 어찌 됐든 무언가를 하고 있는 듯 보일 수도 있겠다. 집을 소개해주고(민) 놀이공원을 관리하며(연주) 피에로 분장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면서(수). 그러나 그들의 노동은 그저 오늘을 견디는 하찮은 수단일 뿐, 그들은 그것으로 무엇이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차마 품지 않는다. 그것은 미래와 단절된 희망 없는 노동이다.

그래서 그들은 각자의 동굴로 숨어들어간다. 연주에게 폐장을 앞둔 일터가 그렇듯이 민과 수에게는 폐업한 가구점이 세상으로부터 그들을 숨길 수 있는 그들만의 동굴이다. 그곳은 그들에게 오직 무의미와 침묵만이 있는 곳, 아무런 욕망과 목적도 없는, 오직 소진만이 가능한 그런 곳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우연히 서로 만나고 사연을 주고받으며 말 없는 공감을 공유한다. 그렇다면 결국 이 소설의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미하게 교차하는 저 가망 없는 인생들의 서로를 향한 쓸쓸한 연대와 공감으로 향하고 있는 것인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주인 없는 빈집에 들어가 짧은 시간을 보내고 나오곤 하는 민의 일탈 행위도 한편으론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빈집의 주인들은 누구인가. 대학생, 헤어디자이너, 서점 직원, 요가 강사, 호프집 주인, 대형 마트 계산원, 휴대폰 판매원 등등. 그럼으로써 민은 자기 아닌 다른 이의 생애를 짧은 시간 동안 살다 죽는 행위를 반복한다.

한편으로 그녀에게 그것은 “어제의 눈물을 기억하지 않고 내일의 포부 따위 갖지 않는, 그저 그 순간만을 살다가 죽는” 죽음의 퍼포먼스다. 슬픔에 잠식되지 않기 위한 나름의 안간힘일 터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그 30분짜리 생애를 자기 것으로 살아봄으로써 집에 배인 집주인의 고단한 삶의 흔적을 자기의 삶과 겹쳐놓는 공감의 행위이기도 하다.

조해진은 그렇게 피폐하고 고단한 삶들의, 서로를 향한 희미한 공감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들의 삶이 견딜만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그럴 리 없다. 그리고 작가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망이 있을 수 없는 이 삶의 폐허를 어찌할 것인가? 조해진이 이 소설에서 들려주는 것은 이 조용하지만 간절한 물음이다.

김영찬 문학평론가

작가 약력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와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등을 냈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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