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돌풍 이끈 ‘알트라이트’
백인ㆍ남성ㆍ중산층 주축으로
극우주의 네티즌 뭉친 대중운동
신자유주의ㆍ세계화에 비판적
공화 주류ㆍ진보 좌파와 대립각
미국 알트라이트(alt-right, 신우익 또는 대안우익) 인사로 분류되는 극우언론 브레이트바트 회장 스티브 배넌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수석 고문으로 낙점되면서 ‘트럼프 돌풍’을 이끈 알트라이트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소수 과격파의 목소리로만 보였던 알트라이트가 트럼프 당선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알트라이트는 전통적인 정치운동이 아니라 극우 국가주의적 성향을 띤 네티즌이 뭉친 일종의 대중운동이다. 백인 남성 중산층이 주축인 이들은 인종ㆍ성별ㆍ계급 문제에서 느끼는 위기감을 백인 우월주의와 반이민ㆍ반이슬람 정서로 연결했다. 트럼프 선거운동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알트라이트의 국가주의와 일맥상통한다. 트럼프가 대선 경쟁자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의 주요 지지층인 여성과 소수인종에 대항해 인종차별과 성차별 문제에 보수적 태도를 취한 것도 알트라이트의 입맛을 만족시켰다.
알트라이트는 공화당이 표방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노선에 비판적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과 골드먼삭스를 거친 전형적 보수 엘리트였던 배넌은 2014년부터 완전히 ‘반체제’인사로 돌아섰다. 한때 공화당의 주류 가치를 대변하는 풀뿌리 조직 ‘티 파티’를 지지했던 그는 이번 대선에서 ‘티 파티 후보’인 테드 크루즈의 가장 강경한 비판자였다. 경제교육재단(EFF)의 경제학자 제프리 터커는 알트라이트가 주류 공화당이 표방하는 자유의지론과 차이를 보인다면서 “알트라이트는 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고, 자유무역과 자유이민에 회의적이며, 개인의 자발성과 역사의 진보도 불신한다”고 분석했다.
알트라이트의 또 다른 적은 진보 좌파다. 이들은 진보 진영이 내세우는 도덕주의나 ‘정치적 올바름’이 개인의 자유와 미국적 정체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한다. 브레이트바트의 대표필진인 밀로 이아노폴로스는 남성 중심 문화운동인 ‘게이머게이트’와 연대해 ‘고스트버스터즈’에 출연한 흑인 배우 레슬리 존스를 맹렬히 공격했다. 또다른 필진 로저 스톤은 클린턴의 핵심 측근 후마 애버딘을 “국제 테러리즘 조직과 연결된 사우디 스파이”라고 공격하며 무슬림 혐오를 부추겼다.
알트라이트의 유행은 유럽의 극우진영이 주창하는 반이민 유럽회의주의와도 맥이 닿는다. 브레이트바트는 헤이르트 빌더스 네덜란드 자유당(PVV) 대표를 주요필진으로 초청하는 등 유럽의 극우 정치인들과의 연계에도 열심이다. 빌더스 대표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주도한 나이절 패러지 영국독립당(UKIP) 대표는 트럼프가 후보로 선출된 공화당 전당대회에도 참석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8월 알트라이트를 트럼프 지지층의 약한 고리로 보고 “트럼프와 알트라이트가 동맹을 맺고 있다”고 공격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했다. 알트라이트 운동을 시작했다고 평가되는 운동가 리처드 스펜서는 오히려 “주류정치인이 우리를 다룬다는 것은 정치적 성공”이라며 환호했다. 클린턴은 9월 다시 이들을 “개탄스러운(deplorable) 집단”으로 표현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트위터에서는 스스로의 닉네임에 ‘개탄스러운’이란 수식어를 붙이며 자랑스러워하는 네티즌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공화당 주류는 알트라이트를 인정하는 데 미온적이다. 중도 성향 공화당 인사들은 알트라이트의 인종차별적 메시지가 다인종사회로서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당내 강성보수 인사로 분류되는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조차 13일 CBS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해 “트럼프와 알트라이트를 연결시키는 것은 좌파의 선동”이라고 했다.
하지만 알트라이트는 미국 정치에 부정할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트럼프 당선 이후 급증하는 인종 증오범죄는 이들이 ‘우리가 주류’라는 자신감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이들이 제작ㆍ공유하는 밈(meme)은 주류 정치와 언론에서 소외된 이들의 감성에 불을 질렀다. 미디어 전문가 알렉스 크라소돔스키-존스는 미국 CNN방송 기고에서 “최소한 향후 인터넷 담론은 알트라이트가 주도할 것이며, 그들의 영향력은 주류매체를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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