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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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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나

입력
2016.11.1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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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 AP 연합뉴스

"클린턴 후보의 최근 e메일 유출 사건과 관련이 있는 FBI 요원 마이클 브라운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로 위장한 살인사건으로 보고 있으며, 피해자가 머리에 총상을 입은 직후 자택이 전소된 것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만약 미국 시민이 위와 같은 뉴스를 접했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e메일 유출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대선 후보의 최대 스캔들이었다. 많은 사람이 어쩌면 힐러리 클린턴의 e메일 사건을 파헤친 전직 연방 요원이 의문의 죽임을 당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실제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뉴스가 미국 선거날 직전인 11월 5일,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했다. 처음으로 이 소식을 전한 곳의 이름은 '덴버 가디언'. 언론사의 탈을 쓴 정체불명의 웹사이트다. 마이클 브라운이 살해당한 채 발견됐다는 내용은 당연히 모두 허구였다.

가짜 뉴스를 전한 덴버 가디언이라는 이름의 웹사이트
가짜 뉴스를 전한 덴버 가디언이라는 이름의 웹사이트

결정적인 순간에 만난 신기루, '가짜 뉴스'

유명 인물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퍼 나르는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대선 주자와 관련한 내용이라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 11월 8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의 다음 대통령 자리를 예약한 이후 이 같은 '가짜 뉴스'가 새로운 분석 대상이 되고 있다. 마이클 브라운 이야기와 같은 가짜 뉴스가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일조한 것 아니냐는 혐의 때문이다.

미국 대선을 둘러싼 가짜 정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거짓 뉴스도 나온 바 있다. 조지아주 작은 도시 맨스필드의 공화당 시장 제퍼슨 라일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화당원의 투표는 11월 8일, 민주당원의 투표일은 11월 9일입니다."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단순한 농담이었다며 글을 지우기는 했지만, 부정행위임에는 틀림없다. 도널드 트럼프 본인 역시 지난 10월 30일 "트위터, 구글, 페이스북이 FBI의 클린턴 재수사 소식을 묻어버리고 있다"라는 허무맹랑한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트윗은 3만6천여 번 리트윗됐고, 7만3천여 개의 공감을 받았다.

과연 소셜미디어에서 퍼진 가짜 이야기가 미국 대선 결과에 영향을 끼쳤을까.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는 단호하게 부인했다.

"페이스북의 모든 콘텐츠 중 99% 이상은 진짜입니다. 가짜 뉴스의 양은 매우 적습니다. 게다가 당파적인 견해나 정치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닙니다. 거짓말로 인해 이번 선거의 결과가 한 방향으로, 또는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마크 저커버그는 11월 13일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내용을 전달하고, 사람들은 정확한 뉴스를 원한다"라며 "우리는 이미 가짜 뉴스를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시작했으며,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클린턴 e메일 관련 가짜 뉴스(왼쪽)와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관련 허위 정보는 페이스북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했다.
클린턴 e메일 관련 가짜 뉴스(왼쪽)와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관련 허위 정보는 페이스북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했다.

사람이 퍼 나르는 페이스북, 기술이 퍼트리는 구글

소셜미디어에서 가짜 소식이 확산하는 까닭으로 전문가들은 검증하지 않는 대중을 꼽는다. 해당 소식이 진짜인지 아닌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좋아요'를 누르는 것에는 아무런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공유'를 하는 과정은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정보의 신뢰성을 먼저 의심하기보다, 오래 보아 온 친구를 더 신뢰하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다. 따지고 보면, 소셜미디어가 없던 시절에도 나쁜 소문은 이런 식으로 퍼졌다. 요컨대, 거짓 소문이 퍼지는 본질적인 메커니즘이 바뀐 것이 아니라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확산하는 속도가 증폭됐다는 얘기다.

국내 페이스북 사용자 사이에서도 최근 기념비적인 사례가 있었잖은가. "페이스북 개인정보 유출과 법적 보호를 위해 남깁니다"로 시작하는 이른바 '페이스북 공용화' 사건 말이다. 10월 셋째 주, 우리말과 영어로 쓰인 페이스북 공용화 관련 게시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이 곧 공용화될 예정이니, 자신의 개인정보가 공공에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이용자들은 이 문장을 그대로 복사해 자신의 타임라인에 선언하듯 올리라는 내용이었다.

페이스북 정책상으로도 불가능하고, 기술적으로 봐도 허무맹랑한 소리였지만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속았다. 결국, 페이스북은 사실이 아니라는 공식적인 메시지를 내보내야 했다. 많은 페이스북 사용자는 자신의 타임라인에 올릴 게시물의 진위도 제대로 거르지 않고 있다는 단편적인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하물며 왜곡된 정치적 사안이나 가짜 뉴스에 속는 일은 이보다 더 쉬운 일일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이들이 사람이라면, 구글 검색엔진에서 가짜 정보를 상위에 노출시키는 것은 알고리즘이다. 구글이 가짜 뉴스를 분별력 없이 검색 최상단에 배치한 일 때문에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미국 선거가 치러진 직후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보다 총득표수에서 앞섰다는 이야기를 올린 '70뉴스' 때문에 생긴 일이다. 실제로는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보다 약 70만 표 적은 표를 받았다. 사실을 거꾸로 써 허위 정보를 퍼트린 것이다.

하지만 구글 알고리즘의 선택은 달랐다. 70뉴스가 내보낸 가짜 선거 결과가 검색의 최상단에 나타났다. 심지어 구글의 지능형 음성인식 기술 '구글 어시스턴트'도 가짜 뉴스를 가장 먼저 전해줬을 정도였다. 가장 연관성이 높은 검색결과를 맨 위에 보여주는 구글의 알고리즘 때문에 생긴 일이다.

구글 대변인은 로이터통신에 밝힌 성명을 통해 "앞으로 구글은 잘못된 정보를 전하거나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 페이지, 혹은 발행인의 정보나 웹사이트의 주된 목적을 숨기는 페이지에 광고 제공을 제한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페이스북의 거짓 정보가 트럼프 당선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페이스북의 거짓 정보가 트럼프 당선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페이스북에 책임 묻기, 어디까지?

독일 검찰은 페이스북의 악의적인 콘텐츠를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독일에서 나치를 주제로 한 게시물이 페이스북을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한 바 있는데, 이를 차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마크 저커버그 CEO와 페이스북 북유럽 책임자 등에게 고발장이 접수됐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주요 경영진을 고발한 인물은 독일의 변호사 찬조 준(Chan-jo Jun)이다. 찬조 준 변호사는 페이스북에서 부적절한 것으로 표시되었지만 삭제되지는 않은 438개의 게시물 목록을 작성했다. 정치적 혐오성 게시물뿐만 아니라 인종 차별적 표현, 나치 시대 대량 학살에 대한 폭력적인 언급이 담긴 사례도 포함돼 있다. 뮌헨 검찰이 예비조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허위 정보 때문에 치르게 되는 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소셜미디어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소셜미디어 기업에 책임을 묻는 행위는 조심스럽게 진행돼야 하는 일이다. 책임을 묻기보다는 공론장의 성숙과 이용자의 자발적인 정보 검증이 먼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된 의견이다. 페이스북에서 퍼지는 가짜 뉴스를 페이스북이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자칫 검열 논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는 "손쉽게 페이스북에 책임을 묻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페이스북에 책임을 묻겠다는 것은 게시물의 전면적인 검열을 허용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설명했다. 강정수 대표는 "지금은 아직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공론장이 성장통, 혹은 사춘기를 겪는 시기"라며 "어쩌면 이 정보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거나 게시물을 공유하는 데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오원석 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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