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정ㆍ관계 인사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엘시티 비리 의혹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관련자 엄단을 지시하고 외교부 제2차관을 임명한 데 이어 17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까지 임명했다. 박 대통령 스스로 국회를 방문해 내각 통할권을 사실상 내놓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다수 국민의 의아심을 자아내는 권한 행사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태로 검찰 수사를 앞둔 마당에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 지시를 내리는 모순된 상황도 현재의 비정상적 국정 운영 현실을 보여준다.
12일 광화문 촛불집회 이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사안을 엄중히 보고 있다”던 청와대 관계자의 말에 비추어 박 대통령이 잠시 거취 문제를 고심하는 듯하다가 180도 태도를 달리한 모습이다. “의혹만으로 내려올 수 없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이나 수사에 협조하겠다던 박 대통령의 검찰 조사 일정 늦추기, 당권을 장악한 친박계의 퇴진 거부, 일부 보수단체의 박 대통령 옹호 등에서도 박 대통령과 측근 세력의 정치적 반격 내지 적극적 대응이 시작됐다는 시각이 무성하다.
박 대통령이 헌법과 법을 내세워 정치도의적 책임을 최대한 미뤄 보겠다고 나선 이상 정면 충돌이냐, 원만한 타결 모색이냐는 문제만 남게 됐다. 이미 대통령의 퇴진 선언을 국정 정상화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운 야권은 장내외 투쟁을 병행하면서 대통령의 결단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민주당의 시국 토론회에서는 의원 총사퇴 제안까지 나왔다. 상황에 따라 현실화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정면충돌이 극도의 정치적 불안정으로 치닫고, 나아가 현재의 경제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쪽에도 최선의 선택일 수 없다. 시민단체까지 가세한 범야권의 시국회의가 국회 내에서의 해결보다 장외 투쟁에 치중하면서 정국 불안과 국정 마비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야권 일각에서 현실ㆍ실용적 해법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우려와 맞물려 있다. 우선 여야 합의로 책임총리를 내세워 거국 중립내각이든, 과도 내각을 수립하고 특검 수사를 거쳐 대통령 탄핵 절차에 들어가는 단계적 접근이 국정 안정과 정상화의 길이라는 내용이다.
내치마저 챙기려 드는 박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지켜봐야만 하는 국민의 마음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런 점에서 야3당 대표가 17일 합의한 야권 공조는 비정상적 정국을 해소할 실마리를 찾길 기대한다. 이날 회의에서 대통령 퇴진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 시민사회와의 협의 등에 합의했지만 여러 차례 강조했듯, 국정 정상화 로드맵과 관련한 각 당의 이견을 극복하는 게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겠다는 상황에서 헌법과 법률이 마련해 둔 현실적 한계를 감안하지 않고 명분에 집착한 해법에만 매달려서는 국정 정상화는 더욱 요원해진다. 나라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지금이야말로 야당이 더욱 냉철하게 사태를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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