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후기
한사오궁 지음ㆍ백지운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408쪽ㆍ2만원
“‘문혁’을 비이성적 변태로 보는 것, 큰 미치광이가 수억 명의 작은 미치광이들을 대동하고 부린 난동으로 보는 것이야 말로 문혁에 대한 가장 나태한 해석이다. 해석자는 역사를 한 떼거리의 정신병자들이 벌인 사건으로 손쉽게 소탕해버린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독자에게 어떤 지혜도 줄 수 없다.”
‘혁명후기’는 중국 현대사의 멍에이자, 전세계 이론가들의 관심사였던 문화대혁명을 다룬 책이다. 문혁은 1966년 5월 16일 마오쩌둥이 내린 소위 ‘5ㆍ16통지’(중공중앙통지)로 시작돼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과 부인 장칭의 체포로 막을 내렸다. ‘홍위병’으로 상징되는 광란이 어떻게 10년간이나 대륙을 뒤흔들 수 있었을까. 저자 한사오궁은 문혁을 ‘마오쩌둥의 권력욕’으로 보는, 홍위병이란 ‘작은 악마들의 광란’으로 보는 시각을 철저히 거부한다. 그렇다고 루이 알튀세르에서 시작해 지금의 알랭 바디우로 이어지는, 문혁을 낭만화하는 서구 좌파들의 시각도 거부한다.
그렇다면 저자에게 문혁은 무엇일까. ‘유토피아의 딜레마’다. 대장정이 완수됐다. 열광하는 인민들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했고, 인민들은 여기에 언제든 맞장구 쳐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문제는 당시 중국이 빈털터리였다는 점이다. “모든 도구를 탁자 위에 펼쳐놓았을 때, 그들이 발견한 것은 종법(宗法)의 결핍, 종교의 결핍, 그리고 더 중요한 금전의 결핍이었다. (중략) 정상국가를 운영하는데 유효한 수단을 하나도 사용할 수 없었다. (중략) 똑똑한 사람들은 알아챘을 것이다. 상도 줄 수 없고 벌도 줄 수 없다면 탁자 위에 남은 도구란 권력과 정치뿐이었다.” 그렇기에 지식인들은 문혁을 악마화하거나 낭만화하지만, 일반 대중들의 문혁에 대한 기억이 이중적이다. “내가 아는 한 이웃은 낮에는 마작이 금지됐다며 ‘문혁’을 욕하다가, 밤이 되면 그 땐 공장장과 월급 차가 없었다며 ‘문혁’ 때가 좋았다고 한다.”
작동방식은 이렇다. 상도, 벌도 못 주니 내거는 건 ‘브랜드 자원’이다. ‘동지’라는, ‘반혁명’이란 호칭을 두고 다투게 한다. 저자는 이를 ‘봉헌경쟁’이라 부른다. 봉헌경쟁은 만민의 성도(聖徒)화로 치닫고, 성도화된 만민은 동지와 반혁명 분자를 구분하고 색출하고 고발하는 만민의 경찰(警察)화로 이어진다.
이건 광기다. 부르주아 표지를 지우기 위해 “나면서부터 하얀 피부와 뚱뚱한 몸을 한 어느 간부는 얼굴에 구두약을 칠하고 목공소에서 살을 깎아내지 못하는 것을 한탄했다.” ‘문혁형 인간’은 피골이 상접한 몰골이어야 했다. “1940년대 핏물이 흘렀고, 1950년대에는 땀이 흘렀고, 1960년대에 눈물이 흘렀던” 중국 현대사는 1970년대 들어 “침이 흘렀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어나가면서 자꾸 떠오르는 건 박정희다. 사회경제사가들은 박정희식 경제개발을 흔히 스탈린식 경제개발모델에 빗댄다. 살짝 시각을 돌려보면 오히려 문혁에 가깝지 않나 싶다. 근대화를 빨리 성취해내고 말겠다는 욕망과 강박증, 그럼에도 경제사회적으로 아무런 수단이 없는 데서 오는 열등감과 조급증, 그 빈 공간을 메우는 중앙정부와 정치권력의 압도적인 우위, 옛 전통을 구습과 적폐의 청산이라는 이름 아래 일거에 말소하고자 하는 욕망, 그럼에도 가장 구습과 적폐에 깊이 빠져들 수 밖에 없다는 아이러니….
반전은 후반부다. 저자는 문혁 이후가 더 문제라 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치단결해 당당히 문혁을 매장”한 뒤 찾아온 것은 시장의 폭압이었다. 극심한 소득격차와 불균등한 성장으로 인한 사회불안이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문혁’에 대한 암중전복이자 그림자 ‘문혁’의 재등장”이라 지적해뒀다. 돈이면 다 된다는, 이른바 ‘시장의 문혁화’다. 저자는 “계급이 다시 형성되면 분명 계급투쟁에 대한 기억과 상상이 환기되고 강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시장의 문혁’이 ‘정치의 문혁’을 되불러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종류의 문혁은 두 번 다시 있으면 안된다. 하지만 문혁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상황, 즉 이상향을 위한 간절한 갈구만큼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저자가 문혁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도, 홍콩에서 나온 이 책이 정작 중국에서 출간되지 못한 이유도 여기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쾌도난마’랄 수 있는 저자의 필력이다. 한사오궁은 1980년대 중반 심근문학(尋根文學)을 만든 이로 위화, 모옌과 더불어 중국의 일급작가로 꼽힌다. 중국 문학가답게 대구를 절묘하게 활용해가면서 거침없이 쭉쭉 써나간 문장들은 읽는 맛이 참 좋다.
여기다 지청(知靑ㆍ지식청년) 출신이어서인지 문학적 감수정보다 논리적 통찰이 빛난다. 동서양 고전을 쭉 훑으면서 “서양에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는 서로 닮았고 뿌리가 같았다.(중략) 베버는 상점 주인, 브로커, 기술공들만 대부분 신교 교도인줄 알았지 공산주의자도 성직자의 가운을 덮어쓴 것은 보지 못했다”고도 한다. “마지막 혁명인 문혁이 실패했으니 이제 혁명은 끝났다”는 서구의 묵시론자들을 두고 “허무는 서재를 뛰쳐나와 맹신이 됐다. 수많은 현대 철학의 대가가 이처럼 아동복으로 갈아입고 문을 나섰다”라며 대놓고 ‘좌파 얼라들’이라 조롱해버린다. 문화대혁명에 대한 책들은 이미 차고도 넘침에도 이 책이 단연 돋보이는 지점들이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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