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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인터뷰]“한식 고급화는 우리 전통문화의 격을 높이는 첨병”

입력
2016.11.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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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권 광주요그룹 회장은 "식당은 한 나라 문화의 특색을 느낄 수 있는 최소단위의 문화복합 공간"이라며 "한국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고급음식문화를 주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조태권 광주요그룹 회장은 "식당은 한 나라 문화의 특색을 느낄 수 있는 최소단위의 문화복합 공간"이라며 "한국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고급음식문화를 주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1980년대 세계를 누비던 40대 초반 종합상사맨 출신 사업가가 부친의 별세로 도자기 사업을 물려받았다. 고급 도자기 시장개척에 고심하다, 고급 식기가 어울릴 고급 한식 보급에 나서고, 또 그 한식과 조화를 이룰 고급 전통주를 개발해야 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시장을 창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가진 재산도 하나둘 줄어들었지만 26년 만에 집념이 세계적 인정을 받았다. 이달 초 발간된 세계 최고권위의 식당 평가서 ‘2017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에 한식당 ‘가온’이 전세계 110여 곳 밖에 받지 못한 최고등급인 별점 셋을 받았고, 자매 식당 비채나도 한 개를 받은 것. 이 사연의 주인공 조태권(68) 광주요그룹 회장을 가온에서 만났다.

_미쉐린가이드에서 별점을 모두 네 개나 받았다. 손님도 크게 늘었겠다.

“한 회사가 운영하는 두 개의 식당이 이런 점수를 받은 게 아시아에서는 처음이라고 한다. 가온의 경우 현재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저녁만 제공하는데, 동시에 5팀 정도 받을 수 있다. 발표 후 12월까지 예약이 찼고 내년 3월까지 예약이 들어오고 있다. 2, 3년 전에 도쿄,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 판 미쉐린가이드를 발간한다는 말을 듣고 언젠가는 서울에도 올 거라 확신했다. 그때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비채나를 강화하고 잠시 문을 닫았던 가온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생각했다.”

_미쉐린가이드를 염두에 두고 다시 시작한 건가.

“물론이다. 2008년 문을 닫은 이후 2014년에 다시 시작하려고 장소를 물색할 때부터 염두에 뒀다. 분청사기 최고의 컬렉션을 갖춘 호림아트센터가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가온을 찾을 외국 유력 관광객들이 우리나라 음식 문화와 도자기 문화의 우수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득했더니 호림아트센터 측도 깊이 공감하며 좋은 조건으로 임대해줬다. 2003년 처음 식당을 열 때도 전 세계 미식가를 겨냥한 것이지 국내 식당과 경쟁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엔 아직도 한식이 저렴하고 푸짐하며 서민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을 찾은 외국 귀빈들을 접대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들을 가온의 주 고객으로 삼았다. 전세계 미쉘린 선정 식당을 찾아 다니며 연구도 많이 했다.”

_미쉐린 별 3개 식당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던가.

“자신만의 철학이 있고 굉장히 청결하고 서비스가 매우 좋다. 삼위일체다. 그 모든 것이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룬다. 손님이 처음 도착할 때부터 들어설 때 느낌, 맞이해주는 사람의 느낌, 앉으면서 내부의 느낌, 음식이 나올 때 식기와의 느낌, 음식을 대접하는 느낌, 먹으면서 느낌…. 이 모든 것이 제대로 갖춰져야 미식가를 감동하게 할 수 있다.”

사실 미쉘린가이드에는 “식당의 편안함, 분위기, 서비스, 식기는 별점의 고려사항이 아닙니다”라고 적혀있지만 길게 따져 묻지는 않았다.

_심사위원이 다녀간 걸 눈치챘나.

“언젠가는 올 거라 늘 생각하고 대비했지만, 심사위원을 너무 염두에 두면 안 된다. 그들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음식의 일관성이다. 특정 셰프가 자리에 없더라도 음식이 똑같이 유지돼야 한다. ”

_심사위원 한 명이 여러 번 오나.

“처음에 한 명이 와 리포트를 쓰면 그 리포트를 읽고 다른 사람이 와서 먹어보고 난 뒤 대조를 해서 리포트를 또 쓰면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리포트를 작성한다. 마지막으로 처음 왔던 사람이 다시 와서 먹어보고 일관성이 있는지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눈치채게 된다. 그런데 셰프는 이를 의식하면 안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식자재의 신선도를 늘 유지하고 그걸 왜 그렇게 요리했는지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그다음에 음식에 어울리는 식기가 있어야 하고, 감성적인 요소도 있어야 한다. 서비스도 중요하다. 한식을 처음 접하는 이들은 이것이 한식이라고 하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 기준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한식으로 그들을 어떻게 감동하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 수준을 인정받으면 대중적인 한국 음식도 자연스럽게 세계화로 이끌 수 있다.”

_한식 세계화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인가.

“무역업을 하며 세계를 다니던 중 1988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 어머니가 ‘너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하셔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맡았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했으니까 이 정도는 쉬울 것으로 생각했다. 우리 도자기를 수출하려고 외국에 가면 ‘후아유’라고 묻더라. 정체성을 묻는 건데, 마땅히 내세울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 없었다. 물질적으로 발전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정신을 담은 상품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 해외에서 차용한 문화를 베끼는 상품만 수출해 왔던 거다. 되돌아 보면 일제 강점기의 우리 문화말살 정책에 그 뿌리가 있다. 일제는 집요하게 우리의 고급 전통문화를 말살시키고, 대중문화는 획일화했다. 그렇게 우리 고급 전통문화가 사라지니, 고급문화를 원하는 사람은 일본 문화를 따라 했고, 그렇게 전통정신이 소멸해 갔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고급 도자기를 개발해 내놓았지만,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한참 고전하다가, 우리 전통 고급 음식문화의 실종이 문제의 근원이란 걸 깨닫게 됐다. 그래서 1997년부터 성북동 우리 집에서 기업가, 주한 외국대사들을 초대해 아내가 준비한 음식으로 만찬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한식과 그 한식을 돋보이게 할 전통 도자기의 가치를 직접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천천히 공감대를 넓혀갔다. 이후 아름다운 식탁전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제품이 상류층의 혼수품으로 정착됐다. 그때 다음 단계인 식당을 시작해야겠다 싶어서 2003년에 가온의 문을 열었다. 그에 앞서 2000년부터 검토를 시작했는데, 성북동 만찬에서 아내가 만들었던 한식을 기본으로 고 윤정진 셰프와 김병진 현 총괄 셰프를 영입해 메뉴를 개발했다. 그러다 보니 음식에 어울리는 술이 없다는 걸 절감했다. 그래서 2004년에 고급 전통주 개발을 시작했다. 우연히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유명한 부티크 와이너리에 초대를 받았는데, 식사가 너무 황홀했다. 미쉐린 별 2개 받은 셰프를 초청해서 했더라. 그 음식을 맛본 후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잡았다. 그래서 2007년 1억6,000만원을 들여 세계 와인업계 주요인사 60여명을 초대해 우리가 만든 식기와 한국서 공수한 식재료로 만든 한식을 대접하는 ‘나파밸리 만찬’을 진행했다. 그 만찬이 국내 언론에 보도되며 가온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과 1년 후 가온의 세든 건물 주인이 바뀌며 결국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대신 술에 모든 걸 집중했다. 그러면서 다시 가온을 부활시킬 시기를 기다렸다.”

_광주요 식기가 너무 비싸다는 지적이 있다.

“광주요가 만드는 레스토랑용 식기는 세계 최고 식당을 겨냥한 것이다. 이런 노력이 서서히 결실을 거두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미쉐린 별점 3개를 받은 프랑스 식당 ‘베누’가 광주요 식기를 쓴다. 런던과 홍콩의 최고급 식당에도 납품했다. 한국판 미쉐린 가이드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면 국내에도 최고급 식당이 늘어나고 고급 도자기도 시장이 확대될 거다. 과거엔 음식이 화려하지 않아서 그릇이 화려했다. 그런 화려한 그릇을 고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리법 발전으로 점점 음식 자체가 화려해지면서 음식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단순하고 절제미를 갖춘 식기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광주요는 무광 그릇을 만들었다. 그런 절제미에 주목한 전 세계 유명 셰프들이 우리 도자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고급 식기 시장이 커지면 광주요가 그 시장을 다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경쟁업체가 등장하면 고용도 늘어날 것이다. 또 자연스럽게 실용적이고 서민적 식기의 질도 같이 향상될 것이다.”

_앞으로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우리가 개발한 음식을 대중이 즐길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가격을 낮추려면 어쩔 수 없이 냉동재료를 써야 하는데, 신선도를 최대한 유지할 수 있는 해동기술을 갖춰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 가온 가격 20~30%선으로 낮출 수 있다. 비채나보다 좀 더 저렴한 1인당 4만5,000원 선이 될 것이다. 우리 전통의 공간, 전통 공예, 도자기, 전통 술이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복합공간을 만들어서 프랜차이즈로 보급하고 싶다. 궁극적 꿈은 100년 후 전세계인 한 달에 한 번은 한식을 즐기게 하는 거다. 10억명이 한 달에 3만원 짜리 한식 한 끼를 먹는다고 치면 연간 360조원 시장이다. 우리나라 정부 1년 예산과 맞먹는다. 그런 꿈이 언젠가 실현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미쉐린가이드 별을 받은 식당들이 경쟁하면서 수준을 높여야 한다.”

_끝으로 가온이 자랑할만한 대표적 음식이 무엇인지 묻자, 조 회장은, 김병진 총괄셰프에게 답하게 했다.

“전복찜과 솥밥 등 너무 많은데…. 가온 음식의 특징은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한식의 강점은 건강식이라는 점인데, 건강에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것 이상은 없다고 생각한다. 자연친화적 한식이란 되도록 재료에 양념을 첨가하는 걸 자제하고 셰프의 기술로 재료 본연의 맛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끊임없는 기술의 연마가 필요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한식을 양념을 많이 쓰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진정한 한식의 원형은 자연스러운 음식이다.”

정영오 여론독자부장 young5@hankookilbo.com

정리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조태권 회장은

▦1966년 일본 외국인학교 졸업

▦1973년 미국 미주리 주립대학 공업경영학과 졸업

▦1973~74년 도쿄 마루이치상사 근무

▦1974~1982년 대우 근무

▦1988년 광주요 대표이사

▦2003년 한식당 가온 개점

▦2008년 고급소주 화요 출시

▦2009년~ 현재 성북문화원 원장

▦2014년 가온 재 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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