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같이 살까?”
장성한 자식들의 제안에 부모의 반응은 얼추 비슷하다. 같이 살긴 뭘 같이 사냐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한편으론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하는 것. 부모와 자녀가 함께 지은 집들은 통상 적적한 노부모를 모시고자 하는 자녀들의 배려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부모 세대와 어린 자녀가 있는 딸 내외 세대가 함께 사는 경기 용인시 상현동의 ‘더 두채’는 사정이 좀 달랐다. “같이 살자”는 딸의 말을 선뜻 받아들이기에, 젊은 엄마는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만나야 할 친구도 너무 많았다.
“심리적으로 곁에 있는 느낌만 주는 집”
“제가 엄마를 엄청 꼬셨어요”
딸이 함께 집 짓기를 제안한 건 2012년 무렵이다. 결혼해서 성남시 분당의 아파트에 자리 잡았지만 오래된 집에서 녹물이 나오는 바람에 다른 집을 찾던 중이었다. 그도 남편도, 마침 단독주택에 대한 로망이 있던 터라 엄마를 졸라봤지만 반응이 생각보다 시큰둥했다.
“아니, 이제 좀 자유롭게 살고 싶었죠.” 50대에 접어든 부모는 반평생에 걸친 직장생활과 육아에서 벗어나 온전히 제 것으로 주어진 하루를 만끽하던 참이었다. 특히 엄마는 뜨개질, 요가 등 취미도 다양한 데다가 양평을 본거지로 인적 네트워크가 탄탄히 형성돼 있었다. “자식이 부모 모시고 사는 건 다 옛말이에요. 친구들도 저한테 미쳤다고 했다니까요.” 그러나 하나 밖에 없는 딸의 청을 끝까지 무시하긴 힘들었다. 결정적으로 어린 손녀가 마음을 흔들었다.“저 어린 것 하나 보느라고 (딸이) 꼼짝을 못 하더라고요. 내가 가끔 봐주면 조금 홀가분해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권경은 건축가(오피스경)를 만난 두 가족은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분명히 했다. “마당만 공유하는 독립적인 두 집”을 지어달라는 것이다. “창문이나 현관이 마주볼 필요도 없고 집 내부에 함께 모일 공간도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 그냥 심리적으로 곁에 있다는 느낌만 주는 집을 원하셨죠.”
그러나 프라이버시가 강해질수록 건축비도 올라가게 마련이다. 건축주들이 견본으로 내놓은 집은 권 소장이 이전에 설계했던 안성의 ‘모아집’이다. 마찬가지로 부모님 세대와 아들 내외가 같이 사는 이 집은 데크를 사이에 두고 본채와 별채가 완전히 동떨어진 구조다. “통상 두 채가 멀수록 건축비가 비싸고 가까울수록 저렴해져요. 이 집의 경우 예산에 맞추려면 두 채가 어쩔 수 없이 붙어야 했지만 그러면서도 최대한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 방안을 찾아야 했습니다.”
집이 위치한 땅은 동남향이다. 햇볕을 무척 좋아하는 엄마의 취향이 대지 선택에 큰 몫을 차지했다. 건축가는 두 채가 다 햇볕을 충분히 받되 서로 간의 접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ㄱ’자로 붙은 형태의 집을 설계했다. ‘ㄱ’자의 가로획은 부모 세대, 세로획은 딸 세대의 집으로, 붙은 지점에는 화장실과 계단을 배치하고 떨어진 지점에는 거실을 두는 식으로 접점을 줄였다. 두 채가 나란히 동남쪽의 마당을 바라보되, 내부에 있으면 옆 집의 존재를 거의 느낄 수 없는 구조다. 디자인이 나오자 적극적이지 않던 엄마도 조금씩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뒷짐만 지고 서있던 아버지도 2층에 예정됐던 서재를 없애려고 하자 내심 섭섭한 기색을 비치며 넌지시 끼어 들었다.
거실 높이 7m, 천장에서 찾아낸 면적
두 집을 쌍둥이처럼 설계하지 않은 데에는 양쪽이 원하는 공간의 타입이 전혀 달랐던 이유도 있다. “땅콩집처럼 붙어 있는 벽의 양이 많으면 프라이버시가 약해지는 건 물론이고, 개별 생활 방식을 일일이 담기도 어려워요. 부모님의 경우 볼륨이 큰 공간을 선호했고, 따님 내외는 자녀의 방이 따로 필요했습니다.”
더 두채의 건축 면적은 113㎡(34평). 둘로 나누면 한 집의 바닥면적이 17평 정도다. 2층으로 올리고 다락까지 추가했지만 한 층에서 탁 트인 공간감을 느끼기엔 면적이 좁았다. 건축가는 공간감을 수평이 아닌 수직에서 찾기로 했다.
엄마네 집 거실은 1층부터 다락까지 통으로 트여 있다. 거실 천장고가 거의 7m에 달해 좁다고 느끼기도 전에 압도적인 백색 벽에 시선을 뺏긴다. 탁 트인 거실 옆으로는 주방과 침실이 있고, 계단을 올라가면 아버지를 위한 작은 서재, 계단을 하나 더 오르면 짐을 쌓아두는 다락이 나온다. 방이 많이 필요 없는 부부의 생활 패턴을 감안해, 집의 절반 가량을 과감하게 층을 없앤 셈이다.
건축가는 마당을 향해 거실에 전면창을 낸 뒤 그 위로 한옥의 고창을 연상시키는 길고 좁은 창을 여러 개 내 햇볕을 한껏 끌어 들였다. “겨울에도 볕이 들어와서 집이 데워져요. 얼마나 아늑하고 따뜻한지 몰라요.” 아파트 생활에 몸이 익은 엄마는 수직으로 트인 공간이 만드는 낯선 개방감에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다.
‘ㄱ’자의 세로획처럼 앞뒤로 긴 딸 내외의 집에는, 1층에 거실과 주방, 2층에 부부침실과 딸의 방, 다락엔 딸의 놀이방과 부부의 컴퓨터실이 자리 잡았다. 딸 내외의 경우 딱히 큰 공간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좁은 느낌을 받을까 봐 거실의 일부만 중층으로 설계했다. 주방 쪽에 있으면 전혀 보이지 않다가 거실 소파에 앉으면 위로 훌쩍 트인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건축가는 중층의 벽면을 일부러 기울여 조형적 재미를 줬다. 2층 침실에서 보면 한쪽 벽이 뒤로 누운 듯 기울어 있다.
“벽을 기울이면 수직일 때보다 심리적 위압감이 덜해요. 따님 부부는 아이가 있기 때문에 부모님 집보다 면적을 더 효율적으로 써야 해서 거실 한쪽만 중층으로 만들었습니다.” 기운 벽이 생소할 수도 있지만 딸은 마냥 즐거워했다. “단독주택인데 아파트와는 뭔가 달라야죠. 평수로만 얘기할 수 없는 요소들이 집에 많은 게 좋아요.”
2층에는 두 집이 공유하는 작은 테라스가 있다. 데크를 깔고 지붕을 설치해 눈이나 비가 올 때도 사용할 수 있다. 건축가는 “두 집을 조금씩 떨어뜨리다가 나온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두 가족 다 내부의 통로를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이런 식의 지붕 있는 외부공간은 굉장히 쓸모가 많기 때문에 제가 제안했습니다. 꼭 이곳을 통해 양쪽이 만나지 않더라도 마당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여기서 할 수 있어요.”
테라스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사람은 손녀딸이다. 문을 두드리며 “하찌(할아버지)” 하고 부르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프라이버시를 내던지고 달려온다. 딸은 “나중에 여기서 함께 꼬치를 구워 먹을 계획”이라며 웃었다.
두 집이 공유하는 마당엔 철쭉과 벚꽃, 앵두나무를 심었다. 거실 전면창 쪽엔 대나무를 부분적으로 심어 시선을 차단하고, 담 대신 흙으로 낮은 둔덕을 쌓아 외부와 마당 간에 느슨한 경계를 만들었다. “신도시 중엔 담을 세울 수 없는 곳이 많은데 그럴 경우 외부인들이 마당에 불쑥불쑥 들어오는 일이 생기거든요. 여긴 규정상 1m까지 담을 세울 수 있지만 그러기보다는 흙 둔덕으로 자연스럽게 심리적 경계만 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돌아앉은 듯 붙어 있는 두 집은 서로 같은 곳을 보고 있다. 부양과 양육의 부담에서 벗어나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산뜻한 삶이 거기 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건축 개요
위치: 경기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용도: 다가구주택
대지 면적: 238㎡
건축 면적: 113㎡
연면적: 190㎡
규모: 지상 2층
높이: 9m
건폐율: 47.43%
용적률: 79%
구조: 경골목구조
외부마감: 스터코, 적삼목
설계: 권경은 오피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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