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 예산’폐기로 존폐기로 선 스포츠산업포럼
학계·언론계·현장 전문가들 모여 난상토론
“스포츠마케팅사 전부 K스포츠로 인식” 고충도
“장밋빛 전망은 위험…모두 초심으로 돌아가야”
“이 포럼을 이 시기에 해도 될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기 때문에 이 토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20일 제 107차 스포츠산업포럼이 열린 서울 올림픽파크텔엔 웃는 이가 없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 투자에 탄력이 붙는 듯했던 스포츠산업 판에서의 현 정권 ‘비선실세’ 최순실(60) 일가와 김종(55)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 2차관의 농단이 속속 들어난 데에 대한 참담함이 가득했다. 이날 포럼은 스포츠산업 내 세부 영역 논의가 이뤄졌던 지난 포럼들과는 달리 ‘스포츠 산업,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포괄적 주제로 언론, 학계, 현직종사자 등 8명의 패널을 비롯한 모든 참가자가 난상토론을 벌였다. 포럼이라기보단 ‘비상대책회의’에 가까웠다.
좌장을 맡은 한남희 고려대 국제스포츠학부 교수는 “최순실 사태로 스포츠산업계에 쓰나미가 덮쳤다는 표현까지 쓰인다. 돌파구 마련을 위해 각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판단해 이번 포럼을 개최하게 됐다”고 했다. 한 교수는 “이번 포럼에는 기존 스포츠산업협회 임원이나 관계자가 아닌 외부 인사들을 패널로 초청했다”고 강조했다. 스포츠산업포럼이 지난 2005년 김종 전 차관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스포츠산업협회 주최 행사인데다 김 전 차관이 초대 포럼위원장을 맡았던 행사라는 점을 감안해 보다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선택이었다. 올해까지 연간 7,000만원이 배정됐던 스포츠산업포럼 예산도 최근 ‘김종 예산’으로 분류돼 내년부터 국고 지원이 끊긴다. 포럼 역시 존폐 기로에 선 상태다.
이날 제 1발제자로 나선 김도균 경희대 체육대학원 주임교수는 “최순실 사태로 스포츠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늘어 코너에 몰린 상황이 됐다”면서 “순수 스포츠산업에 쓰일 정부 지원 예산이 줄고, 삼성 등 대기업들이 스포츠시장 참여를 꺼리는 것이 당장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김종 차관은 정부 주도의 양적 성장을 추구했는데, 되레 곳곳에서 노력해 온 스포츠인과 전문가들이 소외돼 갔다”며 “스포츠산업계는 힘들더라도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연단에 선 박진경 가톨릭 관동대학교 교수도 “정부 주도의 스포츠산업정책이 펼쳐지면서 스포츠산업이 ‘그들만의 리그’로 돌아갔다”며 “이너서클에 들지 못한 이들의 반감도 커진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정권에서 스포츠산업의 정책적 가치가 과장이 됐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 한마디로 ‘사상누각’이 무너진 한 순간에 무너진 셈”이라고 지적했다.
스포츠산업의 가치를 냉철히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영재 중앙일보 기자는 “체육부장으로 있던 기간에 최순실 농단이 벌어져 언론인으로 자괴감을 느낀다”며 “국내 스포츠산업의 미래를 너무 장밋빛으로 바라봤던 게 아닌가 싶다. 경제유발 효과가 부풀려지고 편향되어 있지 않은지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용 KBS 기자는 “최순실 사태로 스포츠산업계가 꿈에서 깨 현실로 돌아온 게 아닌가 싶다”며 입을 열었다. “스포츠산업이 미래산업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시장이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장사에 열을 올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전한 그는 “구구단도 제대로 못 외웠는데 미·적분을 풀려고 덤빈 셈”이라며 쓴 소리를 던졌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체육입학 부정에 대해서도 “연세대와 고려대 등 스포츠명문으로 꼽히는 대학들 모두에 책임이 있다”며 뿌리깊은 부정입학 관행을 비판했다.
현장의 목소리는 더 참담했다. 스포츠마케팅사인 스포티즌을 운영하는 심찬구 대표는 대표는 “처음 보는 이에게 스포츠마케팅을 한다고 하니 K스포츠재단과 무슨 관계냐고 묻고, 연세대 출신이라고 하니 장시호를 아냐고 묻더라”며 “최순실 사태 이후 정말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고 토로했다. 심 대표는 스포츠산업에 대한 각계의 접근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간 기업 입장에서는 스포츠는 오너의 흥미에 좌우됐고, 시민구단조차 정치인들의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된다”고 지적한 그는 “평창올림픽의 경우도 여러 종목서 외국인 선수를 귀화시키려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 메달 하나 따는 게 무엇을 위한 일인지 모르겠다”며 “과거 스포츠가 국위선양 수단이었다면 이제 시민들의 건강과 여가를 위한 수단이 돼야 한다”고 전했다.
과거 프로축구 성남 일화(현 성남FC) 사무국장을 맡았던 정철수 충남체육회 사무처장은 “지자체에서 수익 또는 적자보전을 위해 마케팅을 한다고 했더니 그렇게 돈을 벌기 시작하면 지원예산이 줄어든다며 모두가 말렸다”면서 절박함을 느껴야 한다고 지적했고, 계은영 고양시 체육전문위원은 “지자체에서 인식하는 스포츠는 하나의 산업적 요소라기보단 지자체장 공적 쌓기의 수단이었다”며 인식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모두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도균 교수는 “쌀독에 쌀을 빨리 쌓다 보면 가운데만 높아지고 빈 공간이 많아진다. 이번 사태를 쌀독을 흔들어 빈 곳을 채우고 다시 쌓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전하면서 “세계 각국에서도 스포츠산업을 국가 산업의 핵심 요소로 꼽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포츠산업은 야산과 같아 캐고, 발굴하고, 가꿔야 할 곳이다”고 말했다. 박진경 교수도 “스포츠산업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높은 발전가능성을 보고 꾸준히 키워 온 분야”라며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 스포츠산업의 가치를 냉철히 돌아보고 다시 뜻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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