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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고 교묘하게… 트롤 부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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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고 교묘하게… 트롤 부대가 온다

입력
2016.11.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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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관계망서비스 등 온라인 상에서 정부의 여론전을 대신하는 ‘트롤 부대’가 세계 곳곳에서 조직돼 활동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회관계망서비스 등 온라인 상에서 정부의 여론전을 대신하는 ‘트롤 부대’가 세계 곳곳에서 조직돼 활동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온라인 해설자, 여론 가이드, ‘우마오(五毛)당’, 뭐라고 부르든 상관 없어요.” 컴퓨터 앞에 앉아 중국 정부를 칭송하는 댓글을 연달아 쓰던 26세 청년은 ‘당신의 직업을 뭐라고 부르냐’는 중국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청년은 정부로부터 건당 0.5위안(우마오ㆍ약 85원)을 받고 친정부 성향의 인터넷 댓글을 올리는 200만명의 중국 우마오당 소속 네티즌 중 한 명이다. 그는 “여러 계정을 옮겨 다니며 글을 쓰다 보니 다중인격자가 된 것 같다”면서도 “그저 용돈 벌이일 뿐 옳고 그름의 도덕적 잣대로 평가할 일이라 생각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중국 우마오당과 같이 온라인 무대에서 정부의 여론전을 대신하는 이른바 ‘트롤 부대(Troll Army)’가 최근 세계 곳곳에서 조직되고 있다. ‘트롤 부대’는 각종 여론 조작에 앞장서는 네티즌을 악랄한 요정이라는 의미를 지닌 ‘트롤’로 묘사해 만들어진 조어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특정 집단ㆍ인물을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네티즌, 즉 ‘트롤’들이 정부의 지도를 받으며 반정부 인사를 공격하거나 정부를 찬양하는 글을 게재하며 인터넷 여론 왜곡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러시아, 영국 등 주요국 정부들이 최대 수백만 명에 이르는 트롤 부대를 운영하며 인터넷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지만 이들을 감시ㆍ감독할 수단이 미비해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말 돌리기, 디도스 공격 등 다양한 전술 사용

러시아 정부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크렘린 트롤 부대’는 SNS 게시글로 표적을 직접 겨냥하는 가장 보편적인 전술을 사용한다. 2013년 공개된 러시아의 유명 트롤 부대 양성기관 ‘인터넷 리서치 대행사(IRC)’의 내부문서에 따르면 IRC에 소속된 트롤 600명은 하루 최소 온라인 기사 댓글 50개, 페이스북 게시물 18개, 트윗 50개를 올려야 한다. 게시글 대다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찬양하거나 그의 정적을 비롯해 미국, 북대서양조약기구를 음해하는 내용이다. 취재를 위해 IRC에 위장 취업했던 러시아의 프리랜서 언론인 류드밀라 사프추크는 “푸틴의 정적 보리스 넴초프를 비난하는 댓글을 쓰고 ‘그를 살해한 것은 푸틴이 아닌 넴초프측 인사’라는 음모론을 끊임없이 확산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지만 중국의 우마오당은 사이버상에서 직접적인 공격이나 격한 논쟁을 이끌어내진 않는다. 거대 규모를 자랑하는 우마오당은 당국을 비판하는 대화에 참여해 화제를 교묘하게 전환하거나, 대량의 친 정부 메시지를 올려 주의를 분산시키는 방식을 선호한다. 아이웨이웨이와 인터뷰한 우마오당 청년은 “일부러 공격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것도 영리한 작전이다”면서 “공산당을 겨냥한 비난의 화살을 모두 내 쪽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자유진영의 트롤 부대는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사이버 여론을 조작한다. 2013년 공개된 1급 기밀문서 ‘JTRIG 도구와 기술들’에 따르면 영국 정보통신본부(GCHQ) 소속 트롤 부대인 위협연구정보그룹(JTRIG)은 127개의 해킹도구를 활용해 SNS를 감시하고, 홈페이지 방문자 수나 온라인 여론조사 결과를 의도적으로 조작한다. 이들은 불법 해킹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JTRIG는 ‘어나니머스(Anonymous)’등 해킹을 이용한 활동가 집단에 디도스(DDos) 공격을 퍼붓고 회원 일부의 신상정보를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 악명을 떨쳤다.

6,000명 규모의 ‘AK 트롤’을 운영하는 터키 정부는 지난 7월 쿠데타 시도 이후 대놓고 반정부인사들의 SNS를 검열해 차단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 정부의 트롤 부대는 영어, 히브리어, 아랍어 3개 국어로 SNS 계정 360여 개를 운영하며 정부 활동을 선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심 왜곡, 국가간 긴장 유발하기도

트롤 부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민간이 동원할 수 없는 대규모 인력으로 여론을 조작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게리 킹 하버드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중국의 여론조작 행태를 연구한 결과 중국의 지방정부들은 매년 4억4,800만개에 달하는 허위 인터넷 댓글을 쏟아내며 여론을 조작하고 있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친 정부 성향의 댓글 4만3,800건 가운데 99.3%가 우마오당이 남긴 것으로 밝혀졌고, 이들의 활동은 시위나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는 민감한 시점일수록 급증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에 킹 교수는 “이들 트롤 부대는 정상적인 토론을 방해하고 민심을 왜곡한다”고 지적했다.

각국 트롤 부대의 과도한 공작은 국내 사안을 넘어 국가간 긴장을 고조시키기도 한다. 최근 불거진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이 대표적이다. 대선기간 중 미국 정부는 민주당 이메일을 해킹한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하며 강하게 비난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온라인 지지자 대다수는 미국인이 아닌 러시아 트롤 부대 소속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고, 실제 한 러시아 여성은 TBS에서 “네브라스카 출신 주부 행세를 하고 댓글을 달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분쟁중인 국가들에게 SNS 공간은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된다. 이스라엘은 선전 전문가들로 구성된 비밀 트롤 부대를 운영하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이스라엘 건국의 정당성을 주입시키고 있다. 크림반도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분쟁중인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퍼트리는 가짜 정보에 효율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지난 2월 러시아 트롤 부대와 꼭 닮은 ‘i 부대(i-army)’ 설립을 공식 발표했다.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SNS 상에서 격렬한 사이버전을 이어가고 있다.

민간 감시망 부족해 언론 폭로에만 의존

온라인상에서 트롤을 확실하게 걸러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동일한 내용의 댓글을 반복적으로 쓰는 네티즌이 있다면 일단 의심해 볼 만하다고 이야기한다. 가디언은 “특정 사용자의 의심스러운 말투, 게재 시간과 날짜, 선호하는 주제 등을 다각도로 분석해 일종의 패턴을 유추했다”며 “미국인이라 주장하면서 서툰 영어로 친 러시아 분리주의 댓글을 쓰는 네티즌은 러시아 트롤 부대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롤 부대 문제 해결은 조직적인 민간 감시망이 아닌 일부 언론과 해커들의 폭로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핀란드 국영방송의 제시카 아로 기자는 2014년 크렘린 트롤에 관한 탐사 보도로 큰 반향을 이끌었고, 글렌 그린왈드 전 가디언 기자는 에드워드 스노든으로부터 미국 국가안보부(NSA) 자료를 넘겨받아 영국 JTRIG 등 베일에 싸여 있던 전 세계 트롤 부대 활동에 대한 폭로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트롤의 먹잇감으로 낙인 찍혀 각종 루머와 욕설에 시달리고 심지어 살해 협박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유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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