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제대로 됐는지 의문투성이”
현장교사ㆍ시민ㆍ학생들 비난 봇물
교총ㆍ전교조 모두 “수용 불가”
28일 현장 교사, 시민, 학생 등 각계각층 인사들은 역사 국정교과서가 반민족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군사독재정권을 미화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14년째 역사 과목을 가르쳐 온 노희창 서울 배재고 교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도 임시정부의 중요성을 언급하곤 했는데 굳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해야 했는지 의문”이라며 “이는 일본에 대한 구상권을 소멸시키고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를 지워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제헌헌법의 의미를 설명하는 고교 한국사 250~251쪽에 ‘친일반민족자에 대한 피선거권은 제한되었다’고 기술됐는데, 이는 마치 반민족 행위를 둘러싼 문제가 해결됐다는 뉘앙스로 비친다”고 지적했다. 조한경 부천 중원고 교사 역시 “반민족 친일파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다”며 “(검정교과서인) 금성사 교재에 반민족 행위를 구체적으로 기술한 것과 차이를 보인다”고 했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국정교과서를 “박근혜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효도 교과서”라고 규정짓고 폐지를 요구했다. 4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희 정권 시절을 다룬 단원 제목이 ‘냉전 시기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경제ㆍ사회 발전’인 것부터가 독재에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노희창 배재고 교사 역시 “5ㆍ16쿠데타의 배경이 나와있지 않고 군사정부 시절 행해졌던 정치탄압 등은 한 줄로 줄어든 반면 수출중심 경제개발 등의 내용은 264쪽과 267~269쪽 등 많은 분량에 나와있다”고 꼬집었다.
학생들도 우려했다. 수원의 한 고교에 다니는 박모(17)군은 “당장 이 교과서로 수업을 들어야 할 수도 있는데 정부가 공언했던 것처럼 객관적으로 만들어졌는지, 검증은 제대로 됐는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라며 “실제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교원단체는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국정교과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날 “친일 및 독재 미화, 건국절 등이 그대로 반영될 경우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고 “29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전 회원 대상 수용 불가 찬반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30일 연가투쟁을 시작으로 불복종운동을 전개해나갈 예정이다. 국회에서는 야당의원들을 중심으로 국정교과서 폐기를 촉구했다.
만듦새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이번 국정교과서는 한 면에 두 단으로 내용이 들어가는 2단편집 형태로 제작됐다”며 “이 상태로는 학생들이 글자를 읽기 힘든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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