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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한데... 대통령은 세월호 7시간 왜 기억 못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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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한데... 대통령은 세월호 7시간 왜 기억 못합니까”

입력
2016.11.2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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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동문들, 기억 사이트 열어

경험담 모아 사건 관련자들 압박

우리는 기억합니다 프로젝트 사이트에 올라온 ‘ER’이라는 필명의 시민 글.
우리는 기억합니다 프로젝트 사이트에 올라온 ‘ER’이라는 필명의 시민 글.

“건축시공 수업이었다. 강의실 동쪽에 칠판이 있었고 맨 뒤에서 교수님의 영어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시민들이 2014년 4월 16일의 기억을 온라인 익명 공간에 꺼내놓기 시작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의 부적절한 처신이 끊임없이 밝혀지고 있지만 2년여 전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7시간 행적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참사 당일 청와대에서 성형수술, 전신마취 시행 등 의혹이 속속 제기되고 있는데도 사실이 아니라는 변명만 들릴 뿐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 놓는다. “늦은 아침을 먹다 말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던 머리 속 기억”이 생생한데 왜 박 대통령과 정부관계자들만 ‘그날’을 기억하지 못하느냐는 되물음이다.

시민들의 기억노트가 저장된 곳은 ‘우리는 기억합니다’ 프로젝트 사이트(werecall.org)다. 26일 새벽 문을 연 사이트에는 29일 현재 1,300여개의 글이 올라 왔다. 촛불집회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서울대 동문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만든 단체 채팅방이 시작이었다. 채팅방에서는 최씨 자매를 진료한 의사가 지난 21일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을 진료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한 보도가 나온 후 “말도 안된다”는 비난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동문 7명은 그날부터 머리를 맞대 닷새 만에 사이트를 열었다.

시민들은 그 날 입은 옷, 7시간 동안 자신이 있던 장소의 풍경까지 상세하게 기록했다. 필명 ‘그날의 기억’ 은 “흐린 아침, 남편과 아이들을 서둘러 출근과 등교시킨 뒤였다. 가스검침원 아주머니가 와서 정말 큰일이 났다고 했다. 설마 하면서 그렇게 아이들을 떠나 보냈고 멍하게 며칠을 보냈다”는 글을 남겼다. 한 시민은 “오빠가 해경이라 TV에서 더 눈을 뗄 수 없었다. 가족이 흘린 눈물의 반은 죄책감에 눈물을 흘리는 오빠를 보며 같이 흘린 것이었다”고 썼다. “전원 구조했다는 기사를 보고 안도한 뒤 웃고 놀고만 있어서 미안하다” “그 순간 내 딸이 사고를 당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게 정말 부끄럽다” 등 반성과 자책의 글도 많았다.

이들의 메시지는 단순한 공유와 위로에 그치지 않는다. 각자의 기억 조각을 모아 사건 관련자들에게 부끄러움과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또 다른 목표다. 당시 취업준비생이었던 회사원 신모(26)씨는 “사실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엄청난 사건을 연이어 겪다 보니 말문이 막혀 기록을 남겼다”며 “평범하지만 진심이 담긴 시민들의 사연을 보고 이제라도 양심선언을 하는 사람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서울대 졸업생 A씨는 “좋은 글이 쌓이면 책자로 만들어 참사로 힘든 시간을 겪은 유가족들에게 전달하거나 참사 희생자 추모 추모 조직인 4ㆍ16 기억저장소에 기부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우리는 기억합니다 프로젝트 사이트에 올라온 시민의 글.
우리는 기억합니다 프로젝트 사이트에 올라온 시민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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