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서술 분량 줄며
수탈ㆍ저항으로만 채우다
생활사ㆍ문화사 사라져
살아 있는 권력 친일행위 은폐
박정희 분량 9쪽… 대폭 늘어
“역사 왜곡 변종 친일교과서” 評
‘살아있는 권력의 친일행위 은폐, 다른 과오를 감추기 위한 특정 사건 부각 및 양 늘리기, 주요 내용 축소 또는 희석, 독재정권 포장.’
역사학계가 밝힌 역사 국정교과서의 민낯이다. 우(右)편향이란 콤플렉스를 떨쳐내기 위한 물타기 편집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바람에 사실상 변종 친일교과서가 됐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30일 한국일보에 “국정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지나치게 강조된 측면이 있다”고 문제제기를 했다. 그는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위안부를 과장해 조명하는 식으로 자기들한테 쏟아지는 비판을 피해 보려는 것이 친일 프레임(틀)에 취약한 현 정권의 의도이자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위안부가 과도하게 부각되면서 징병이나 징용 같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은 축소되거나 누락됐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역사 국정교과서의 일제강점기 부분 서술 분량이 검정교과서에 비해 크게 적어진 데다 수탈(통치사) 저항(독립운동사)으로만 채워지다 보니 생활사나 문화사는 사라지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예컨대 재일 한인들이 형성ㆍ유지된 배경에 대한 설명은 빠지고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들만 역사에 남았다는 것이다. 그는 “임시정부 계승을 부정했다는 비난을 정부가 의식한 결과”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정교과서의 친일파 서술은 살아있는 기득권엔 유독 관대했다. 고교 ‘한국사’의 ‘전시 체제하 친일 반민족 행위’ 부분에 친일파로 거론된 인물은 이광수, 박영희, 최린, 윤치호, 한상룡, 박흥식 등인데 이들은 모두 현재와 단절된 과거 인물들이다. 반면 해방 이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존 기득권 친일파는 명단에서 빠졌다. 배 부소장은 “국정교과서에서 주목할 대목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주류 언론에 대한 서술이 긍정 일색이라는 점”이라며 “두 신문의 사주인 방응모와 김성수를 친일파에서 빼고 두 신문이 한글보급 운동을 전개했다는 것만 상술했다”고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을 잘 포장하려 했다는 의심도 사고 있다.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라는 내용의 1946년 6월 이 대통령 발언에서 ‘우리는 남방만이라도’를 빼고 대신 ‘38선 이남에서도’라는 표현을 추가한 건, 이승만의 몫인 분단 책임을 희석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는 게 역사학계의 분석이다. 배 부소장은 또 “검정교과서가 무장 독립운동 위주라면서 정부가 외교적 독립운동을 병렬했는데 둘은 등치 하기엔 비중 차이가 크다”며 “이승만 미화 의도”라고 했다.
이날 전국역사교사모임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국정교과서의 핵심 특징으로 꼽았다. 분석에 따르면, 고교 ‘한국사’는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세계의 변화’ 단원에서 박정희 서술 분량이 9쪽에 달한다. 미래엔이 펴낸 기존 검정교과서의 6쪽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국정교과서 분량이 검정보다 20% 가량 준 것을 감안하면 박정희 기술이 대폭 늘어난 셈이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교수는 “장면 정권도 경제개발을 추진했지만 박정희와는 달랐다는 서술로, 박정희가 아니면 한국의 경제성장이 불가능했다는 식의 논리를 펴려 한 기색이 역력하다”고 꼬집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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