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겨울,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을 달리며 취재하던 기자들에겐 잊을 수 없는 차량 번호가 있다. 서울 2버 4442.
1995년 12월 3일, 군 형법상 반란수괴 등의 혐의로 검찰에 체포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안양교도소로 향하는 검찰 승용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고향 합천에서 300여km에 이르는 머나먼 길이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상 수갑을 채우진 않았지만 양 옆에는 육중한 체격의 수사관들이 양 팔을 끼고 있었다.
그 해 11월, 김영삼 대통령은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기치아래 5·18 특별법을 제정하며 12·12 쿠데타에 대한 단죄를 시작했다.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스스로 뒤집고 즉각 수사에 착수했고 서울지검 특수본(이종찬 본부장)은 곧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저인 연희동에 소환장을 통보했다. 공동 정범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미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상태였다.
반발한 전두환은 2일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 측근들과 골목 성명을 발표한 후 고향 합천으로 내려가 버렸지만 수사팀의 추적 또한 만만치 않았다. 사전구속영장을 발부 받은 검찰은 이날 밤 영장집행을 위해 이수만 서울지검 1차장을 합천에 급파했다.
3일 새벽 6시, 전 씨는 체념한 듯 종가집 골목을 나섰다. 집에서 나와 승용차에 오르는 좁은 골목길에서는 수 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며 어둠을 밝혔다.
검찰은 장거리 입송에 대비해 일반 호송차로 사용하던 대우차 르망 대신 상급인 로열 프린스를 준비해 그나마 예우를 지켰다.
전 전 대통령에 있어 5시간에 이른 이날 교도소 가는 길은 그의 일생 중 가장 긴 하루였을 것이다. 사진 속, 승용차 가운데에 끼인 뒷모습에서 권력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손용석 멀티미디어부장 st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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