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일씨의 연기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가수 유희열이 홍안의 청년이 부른 발라드 노래를 듣고 한 말이다. 톡톡 튀는 개성으로 마음을 사로 잡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서서히 스며 들게 한다는 점에서 둘이 비슷하다고 했다. 두 손을 모아 간절하게 노래하는 앳된 사내의 목소리에는 기교가 없다. 특출한 고음대신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음색이 무기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삭풍에 헐벗은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가는 햇살을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지난달 29일 1집 ‘목소리’를 낸 정승환(20)의 노래에 대한 감상이다. “‘목소리’만큼 저를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단어는 없는 것 같았어요. 가수로서 제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정승환은 새 앨범에 직접 작사와 작곡을 한 ‘목소리’를 실었다.
이제 막 데뷔한 정승환이 가요계에서 소리 없이 강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정승환은 새 앨범 타이틀곡인 ‘이 바보야’로 멜론, 지니, 엠넷 3대 음원 사이트에서 이달 첫째 주(11월28일~12월4일) 주간 차트 1위를 휩쓸었다. 아이돌그룹 블락비 멤버 지코도 리듬 앤 블루스(R&B)스타 딘, 크러쉬가 함께 부른 신곡 ‘버뮤다 트라이앵글’을 냈지만, 신인 발라드 가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정통 발라드 음악에 대한 청취자들의 갈증을 정승환이 해소해 준 것”을 인기 이유로 꼽았다. 김동률과 박효신, 성시경의 뒤를 이을 정통 발라드 가수의 부재 속에서 정승환이 새 앨범으로 그 빈 자리를 채워줬다는 평이다. 정승환이 지난 5월 낸 드라마 ‘또, 오해영’ OST 수록 곡인 ‘너였다면’도 30위 권에 이름을 올리며 차트 순위를 역주행하고 있다. 정승환의 새 앨범 발매를 계기로 청취자들이 그의 옛 노래까지 찾아 듣고 있는 것이다.
“아직 어리지만 여태 마음을 빼앗겼던 발라드 노래엔 어떤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졌어요. 노래를 들으며 나만의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죠. 쉬어갈 수도 있었고요. 저 역시 그런 노래를 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제 노래가 작은 위안이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정승환은 데뷔 앨범을 내놓기까지 꼬박 19개월 동안 곡을 쓰고 또 썼다. 지난해 4월 끝난 SBS 오디션 프로그램 ‘K팝 스타4’에서 준우승을 한 뒤다. 앨범 발매를 서두르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의 목소리에 맞는 곡으로 새 앨범을 꾸리기 위해서였다. 그의 선배인 가수 박새별이 ‘물꼬’를 터줬다. ‘이 바보야’를 작곡한 박새별은 자신의 새 앨범에 타이틀곡으로 쓰려고 아껴뒀던 곡을 정승환에 줬다. 박새별은 “눈물이 펑펑 쏟아질 곡을 만들고 싶어 작곡한 노래”라며 “(정)승환이가 불렀을 때 너무 슬픈 느낌이 들어 준 것”이라고 말했다. 박새별은 정승환이 녹음실에서 부른 ‘이 바보야’를 듣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이 바보야’는 이별의 슬픔을 현악 오케스트라 선율에 실어 비장미가 돋보인다.
정승환의 앞에 ‘꽃길’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SBS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라 타 방송사에서의 활동에 제약도 있다. 정승환은 새 앨범 발매 뒤 KBS와 MBC의 음악 순위 프로그램 무대에는 서지 못했다. 정승환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오히려 남들이 주목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더 걱정했다.
“목소리에 만족하냐고요? 아니요. 매일 고민해요. 제 얘길 노래로 어떻게 더 자연스럽게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한 숙제를 아직도 풀지 못했거든요. 담백한 게 전부는 아니니까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