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이 달아오른 2004년 3월 11일. 노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어 “잘못이 없는데 시끄럽다고 사과할 순 없다”고 버텼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경제 파탄 책임, 불법 정치자금 모금 논란 등 당시 야당이 내세운 탄핵 사유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노 전 대통령의 완강한 태도에 질린 여야 의원들은 다음날 국회 본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노 전 대통령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기자회견이나 4차 대국민담화 등을 통한 최후 변론을 하지 않고 탄핵 투표 심판대 위로 직행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이 9일 국회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진솔한 입장’을 직접 내는 것이 적절한지를 놓고 청와대 참모들은 6일까지 격론을 벌였다. 박 대통령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표결 결과를 기다리는 게 낫겠다”며 침묵하는 쪽을 택했다고 한다.
청와대 참모들은 탄핵안이 부결될 가능성에 별로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7일“촛불 민심이 두려워 탄핵으로 급하게 달려가는 여야 의원들을 돌려 세울 마땅한 방법이 없다”며 “박 대통령이 나서서 막판 뒤집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탄핵안 가결 이후의 일들을 담담하게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 상황에 대비해,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역할 분담 문제와 박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통치행위 범위 등 실무적 사안들을 조심스럽게 점검하고 있다. 청와대 인사는 “본인이 탄핵되더라도 극심한 국정 공백 상황이 벌어져선 안 된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확고한 뜻”이라며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 당시의 선례들을 참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탄핵안이 가결되면 절차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지켜볼 것”이라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박 대통령이 조기 퇴진하지 않고 최장 6개월이 걸리는 헌재의 탄핵 심판을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6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ㆍ정진석 원내대표와 만나 “탄핵안 가결 이후 그 결과를 받아들여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하겠다”면서 헌재의 탄핵 기각을 노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청와대는 당분간 몸을 낮추고 특별검사의 최순실 게이트 수사와 헌재의 탄핵심판 대응에 집중할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특검 수사에 대비해 유영하 변호사를 포함해 4명의 변호인단을 꾸렸다. 헌재 심리가 시작되면 변호인단 규모를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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